[살며 사랑하며-윤고은] 봄꽃은 예외



서랍 하나면 충분하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가진 것이 적고 맡은 영역은 아직 좁았던 시절. 삶이 지속될수록 한 사람의 영역이 늘어나서 이제는 정리, 정돈, 수납, 보관 같은 말이 과제처럼 다가온다. 어떤 물건이 이 집에 이 방에 혹은 이 휴대폰 안에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그걸 막상 찾아낼 수는 없는, 그런 순간들이 종종 생겨나는 것이다.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는 것도 미니멀 라이프의 한 방법이라고 하던데, 그 방법도 잘 소화하지 못하면 짐스러워질 것만 같다. 디지털 시대의 사진이야말로 정리와 보관이 필수적인데, 지금 나는 사진 파일과 폴더를 관리하는 데도 게을러졌으니.

게으름에 대한 변명을 해보자면 내가 가진 사진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이 태어나는 속도를 내가 따라잡지 못한다고나 할까.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할 사진이 있을 때 그게 내 휴대폰과 노트북 안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얼른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뭐 대수냐는 듯이 새로 사진을 찍어 보내곤 한다. 그렇다 보니 휴대폰 안에는 숨은 그림 찾기처럼 거의 비슷한 구도의 사진들이 몇 십 장씩 있다. 커피, 음반, 음식, 자전거나 이정표…. 보관된 것을 찾는 것보다 새로 찍는 것이 시간 절약 측면에서는 나은 것도 같다. 다만 공간의 문제를 헤아려보면, 이게 이삿짐처럼 얼른 와 닿는 건 아니라고 해도 뭔가 짐스러운 인상을 버리기 힘들다.

사진을 일회용품처럼 쓰고 있다는 부담감이 드는데, 물론 예외도 있다. 미세먼지가 재를 뿌리고 있지만 산수유와 매화, 개나리와 목련, 벚꽃과 진달래…. 봄꽃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꽃은 마감에 늦지도 않고 피네, 하면서 휴대폰을 꺼낼 때는 어떤 부담도 없다. 이 휴대폰과 저 꽃이 이미 구면인 걸 알지만 그래도 또 처음처럼 찍게 되고 그게 당연한 것이다. 바로 지금을 포착하지 않으면 휘발될 것 같은 세계가 있는데 봄꽃이 꼭 그렇다. 저장 공간이니 용량이니 미니멀이니 그런 거 난 모르겠소, 하면서 찍어보는 것이다. 윙크하듯이 찰칵.

윤고은(소설가)

그래픽=공희정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