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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잇몸병, 쉽게 보다 앞 못본다… 치주질환 1500만명 시대






 
대한치주과학회와 동국제약 관계자들이 지난달 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잇몸의 날(매년 3월 24일)을 맞아 치주질환 예방과 전신건강 관리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치주과학회 제공


치주질환, 잇몸과 치아 잡아주는 뼈에 염증 증상… 세균이 만든 치태·음식찌꺼기 결합 치석이 원인
스트레스·식습관·음주 등으로 젊은층에 급증… 20대, 5년 새 2.3배로 증가율 1위… 30대는 2배
조산 위험 7.5배, 당뇨병 6배 등 온몸에 적신호… 정확한 칫솔질·정기 검진·꾸준한 유지치료 중요



‘풍치’로 불리는 치주질환(잇몸병)으로 진료받은 환자가 지난해 처음으로 15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3명 가운데 1명꼴이다. 2012년 840만여명에서 5년 사이 80.1% 급증했다. 2013년 1000만명을 첫 돌파한 뒤 4년 만에 500만명이 늘었다.

지난해 외래진료 다빈도 질병 순위에서 치주질환은 급성 기관지염(1619만명)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건강보험 진료비는 1조2400억원에 달했고, 전년 대비 진료비 증가율(12.7%)은 단연 1위였다.

치주질환은 치아를 감싸고 있는 잇몸과 치아를 잡아주는 그 아래 뼈(치조골)에 염증이 생기는 걸 말한다. 원인은 입안의 세균이다. 구강 내에는 600여종의 세균이 살고 있는데, 이 가운데 P. 진지발리스 등 5∼6종이 잇몸병을 일으킨다. 이들 세균이 치아 면에 끈끈한 막, 즉 플라크(치태)를 만들고 제때 제거되지 않으면 침, 음식찌꺼기와 결합해 단단한 덩어리(치석)가 된다. 치태와 치석이 잇몸 염증의 원인이다. 초기 잇몸(치은)에 생긴 단순 염증을 치은염, 염증이 진행돼 치조골까지 망가진 경우를 치주염이라 한다.

치주염을 그대로 방치하면 치아 뿌리가 드러나고 점차 흔들려 최악의 경우 저절로 빠진다. 치조골이 심하게 손상되면 인공치아(임플란트)를 심는 것도 어려울 수 있어 늦지 않게 치료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20, 30대 잇몸병 급증

일반적으로 충치는 나이 어릴 때 많이 생기고 잇몸병은 나이 들수록 환자가 많아진다. 그래서 40대 이후 중·장·노년층의 얘기로만 여기기 쉽다. 하지만 근래 20, 30대에서도 치주질환자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치은염 및 치주질환 진료를 받은 20대 환자는 202만8576명으로 2012년(88만6013명)보다 2.29배 증가했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30대는 5년 사이 2.01배(2012년 113만9783명→2017년 228만8801명) 늘어 세 번째로 많았다. 80세 이상이 2.07배(14만1554명→29만3548명) 늘어 증가율 2위를 차지한 걸 빼면 40대 이상 연령대의 증가율은 20, 30대에 미치지 못했다.

치주질환 급증의 원인은 2013년 7월 이후 1년에 한 번 스케일링(치석제거술)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면서 치과 문턱이 낮아진 측면이 크다. 특히 20, 30대의 의료 이용이 늘면서 자각하지 못했던 잇몸병을 일찍 발견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스트레스 흡연 식습관 음주문화 등 구강 건강에 좋지 않은 생활환경도 젊은층 잇몸병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삼성서울병원 치주과 양승민 교수는 “20, 30대는 취업이나 학업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연령대로, 스트레스는 잇몸병의 원인이 되는 염증 강도를 증가시킨다”면서 “젊은층에게 높은 흡연율도 잇몸병 증가의 기여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탄산음료나 에너지드링크 등 당이 많이 든 음료나 커피 섭취 증가, 잦은 음주 습관도 잇몸병에 악영향을 준다. 강동경희대병원 치주과 강경리 교수는 “술자리가 잦은 젊은층 중에는 안주와 함께 술을 마신 뒤 습관적으로 칫솔질 없이 그대로 잠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15∼35세에 주로 생기는 ‘급진성 치주염’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40대 이후 발생하는 만성 치주염은 치아 뿌리를 싸고 있는 치주인대와 치조골을 10∼15년에 걸쳐 서서히 녹이거나 삭혀서 없앤다. 반면 급진성 치주염의 경우 이보다 진행 속도가 4∼5배는 빨라 심하면 발병 2년 안에 잇몸이 대부분 망가질 수 있다. 특히 가족력이 있거나 잇몸병 원인균 중 ‘A. A세균’이 치태와 치석 속에 많거나 면역기능이 떨어진 전신 질환(백혈병 등)을 앓고 있을 경우 빠른 속도로 치조골이 파괴될 수 있다.

젊은 나이에 치아가 흔들리거나 잇몸이 붓거나 아프고 피가 나는 등의 증상이 느껴질 땐 치과 검진을 꼭 받아야 한다. 치과 X선 촬영 시 아래·위 앞니와 제1대구치(가운데 앞니에서 여섯 번째) 사이에 원 모양으로 치조골이 파괴돼 있으면 급진성 치주염이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만성 치주염의 경우 많은 양의 치태와 치석, 극심한 염증으로 인해 스스로 치주염임을 느낄 수 있지만 급진성 치주염은 치태와 치석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고 염증이 심하지 않아 치조골 상태가 악화된 후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기 검진을 통한 조기 발견과 치료가 중요하다.

치주질환, 온몸 위협

치주질환이 전신에 각종 질병을 만들고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자칫 가벼이 여길 수 있는 잇몸병이 온몸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국내외 연구 결과를 보면 치주질환은 뇌졸중 2.8배, 혈관성 치매 1.7배, 심혈관계질환 2.2배, 당뇨병 6배, 류머티즘성 관절염 1.17배, 조산·저체중아 7.5배, 발기부전 등 성기능 장애는 1.53배 위험도를 높이는 걸로 알려졌다. 치주질환자는 췌장암 위험이 50∼59% 높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한양대 구리병원 안과 조희윤 교수는 국민건강 영양조사 대상 40세 이상 1만2000여명을 연구한 결과 심한 치주질환자는 실명할 수 있는 황반변성 위험이 1.61배 높은 걸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이런 결과를 최근 대한치주과학회 주최로 열린 ‘잇몸의 날’(3월 24일) 행사에서 발표했다.

치주병은 전신질환에 크게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강경리 교수는 “치주병을 유발하는 세균과 그 독소가 혈류(피 흐름)를 타고 이동하며 균혈증(세균이 혈액 속에 침투)이나 전신적 면역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경로와 치주 병소(病巢·병터)에서 만들어진 염증 매개물질(사이토카인)이 혈류를 통해 전신에 전달되는 경로”라고 설명했다. 이어 “잇몸 조직이 세균과 미생물, 염증과 면역 매개체의 저장고 역할을 하고 혈관을 통해 다른 신체 기관에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사망 원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비감염성 만성질환(NCD)들과 치주 질환이 흡연이나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 음주 등 공통된 위험 요소를 갖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양승민 교수는 “유병률과 치료비용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치주병이 비감염성 만성질환 발병이나 사망 위험과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만큼 적절한 대응책 마련을 위해 정부 부처 내에 치과의료 전담 부서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잇몸 유지치료, 15% 불과

치주질환의 예방과 관리를 위해선 정확한 칫솔질과 정기 치과 검진이 기본이다. 강 교수는 “많은 사람이 자신이 칫솔질을 여러 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치과에 온 환자를 대상으로 칫솔질 후 염색제로 남아 있는 치태를 확인해보면 치아 사이나 잇몸과 닿는 부위 등에는 칫솔이 닿지 않아 치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칫솔질은 구석구석 정확히 이뤄져야 하며 닿기 힘든 부위는 첨단 칫솔이나 치간칫솔, 치실 등을 활용해야 한다.

잇몸 치료 후 꾸준한 유지치료도 매우 중요하다. 원광대 치대 치주과학교실 피성희 교수가 최근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잇몸 치료 후 9년까지 유지치료 및 잇몸 관리를 지속하고 있는 환자는 1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치주 유지치료는 치주치료 후 일정 간격으로 치과를 방문해 치태 관리를 받는 등 건강한 잇몸을 유지토록 돕는 과정이다.

피 교수는 “치과 방문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치주염 환자의 경우 정기적으로 내원하는 환자에 비해 치아 상실률이 3배 높게 나왔다”고 말했다. 유지치료 주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칫솔질이 구석구석 잘 안 되는 사람일수록 자주 하는 편이 좋다.

강경리 교수는 “대한치주과학회에서 정한 매년 3월 24일 ‘잇몸의 날’은 3개월마다 잇몸(2)을 사랑하자(4)는 의미로 3개월 주기를 권장하고 있다”면서 “이는 구강 안을 깨끗이 한 상태에서 잇몸 병원균이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데 평균 9∼11주가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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