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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에게 묻다] “심부전, 年 4.5%씩 증가… 65세 이상 입원 원인 1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심장내과 오병희 박사(뒤)가 심혈관조영 검사를 마친 한 고혈압 환자의 영상을 보며 심부전 예방을 위해 어떤 조처가 필요한지 점검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폐암을 제외한 대부분의 암과 심근경색보다 생존율이 낮은 치명적인 병이 있다. 입원 중 사망률이 5.2%에 이르고 평균 재원일수는 8일로 조사돼 있다.

환자 본인 부담 병원비는 폐암보다 비싸다. 폐암의 1일 건강보험급여 진료비는 24만8000원인 반면 이 병의 1일 보험급여액은 무려 42만5000원이다. 폐암보다 병원비가 약 1.7배 많이 드는 셈이다.

고령화 사회의 심장 저격수 또는 심장질환의 종착역으로 불리는 ‘심부전’ 얘기다. 암에 이어 한국인 사망원인 질환 2위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병이다. 더 적극적인 정부 차원의 관리대책 수립과 국민 계몽 및 인식 개선이 절실한 이유다.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심장내과 오병희(65·서울대 명예교수) 박사는 2일 “고령화 시대의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심부전 관리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며 “지속적인 범국민 심부전 예방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 박사는 고혈압과 심부전 치료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다. 1989∼1990년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주립대(UCSD) 의대 연구전임의사를 거쳐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심혈관계중환자실장, 강남센터 원장, 병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달 초에는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제2대 병원장으로 취임했다.

오 박사는 그간 심부전·고혈압 관련 각종 국제 임상시험 연구에 한국 대표 연구자로 참여해왔다. 특히 2005년 한국 의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시판허가를 받기까지 다국가 고혈압신약 제3상 임상시험 연구를 이끌어 주목을 받았다.

대한심장학회 이사장, 한국국제의료협회 회장, 대한심장학회 심부전연구회장 등 학회 활동도 활발히 했다. 지금까지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은 400편 이상이다. 오 박사는 1994년 국내 첫 원거리 심장이식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등 심장이식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5년 생존율 50% 미만…심장질환 종착역

우리 몸의 심장은 근육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펌프로 한순간도 쉬지 않고 혈액을 온몸으로 순환시켜 산소와 영양분을 골고루 나눠주는 일을 한다. 심장기능에 이상이 생겨 전신 장기 또는 조직이 필요로 하는 혈액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상태가 심부전이다.

발생빈도는 매년 성인인구의 1∼2% 정도다. 환자는 대부분 노인이고 연령이 증가할수록 높아진다. 남자의 경우 유병률이 40∼59세 때 0.8% 정도밖에 안 되지만 60∼79세 때 3.8%로 높아지고 80세를 넘어서면 9.4%까지 치솟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여자도 대체로 비슷한 추세다. 성별로는 남자가 53%로 여자보다 약간 많다.

오 박사가 2011년 3월부터 2012년 2월까지 3년간 서울대병원 등 전국 대학병원에서 심부전 진단을 받은 환자 562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KorAHF 자료를 보면 발병 당시 평균연령은 68세였다.

이는 일본의 73세, 미국의 72세, 유럽의 70세보다 약간 낮은 수치다. 하지만 고령화 속도가 세계최고 수준으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향후 10년 내 우리나라도 발병연령이 70세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 고혈압 당뇨 비만 있으면 가속화 위험

심부전은 속칭 심장질환의 종착역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한번 발병하면 죽을 때까지 입·퇴원을 반복하며 점차 악화돼 5년 생존율이 남성 35% 여성 50%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심부전 진단을 받는 환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오 박사는 “심부전으로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는 인원이 연평균 4.5%씩 증가하고 있다”며 “65세 이상 고령자가 병원에 입원하는 원인질환 1위에 오를 정도”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심부전 환자 5명 중 1명은 90일 이내 병원에 재입원하고 3명 중 1명은 1년 이내 재입원을 하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환자 수와 의료비 지출 규모가 계속 커지는데 반해 이 병에 대한 경각심이 턱없이 낮다는 점이다. 오 박사는 “고령화 시대 국민의료비 절감을 위해서라도 심부전 예방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적절한 치료환경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에서 심부전 유발 원인질환과 악화 위험인자를 제거하는 노력이다. 심부전을 일으키는 원인질환으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전체의 33∼36%를 차지하는 허혈성 심장질환(협심증 심근경색 등)이다. 다음으로 심근질환(22∼23%) 고혈압(19∼22%) 심장판막증(13∼15%) 등의 순서다.

심근경색 병력, 심방세동, 뇌혈관질환, 당뇨 등이 있을 경우 심부전에 의한 사망위험이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나이가 많거나 고혈압 당뇨 비만 알코올중독이 있는 사람, 흡연자 등도 심부전 발생 고(高)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일상생활 중 숨이 차면 심부전 의심해야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때 방치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려는 자세도 중요하다. 건강한 친구들과 같이 걸으면 숨이 차서 따라갈 수 없고 일상 활동보다 심하게 움직일 때 숨이 차다면(운동 시 호흡곤란) 심부전 발병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 주부들의 경우 앉아서 빨래를 하거나 걸레질을 한 뒤에도 숨이 찰 수 있다.

예전보다 갑자기 더 피곤하고 허약해진 것을 느끼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심장이 산소가 풍부한 혈액을 근육에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면 쉽게 피로해진다.

몸이 붓는 증상도 나타난다. 심부전에 의한 부종은 발 발목 다리가 붓는 게 특징이다. 콩팥이 제 기능을 못할 때는 눈과 얼굴이 붓는 등 주로 상체 쪽에 부종이 나타난다.

잠자다가 숨쉬기가 어려워서 깨거나 반듯하게 눕기보다 모로 누워 자야 숨쉬기가 편하다면 한번쯤 심부전을 의심해봄직하다. 심부전에 의한 ‘발작성 야간 호흡곤란’ 증상 때문일 수 있다.

오 박사는 “짜고 기름진 음식을 즐기는 식습관, 운동 부족, 흡연 등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치는 것도 원인질환 제거 치료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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