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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동백꽃·통통 주꾸미가 톡 터뜨린 봄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동백숲을 찾은 여행객들이 붉은 꽃길을 걸으며 봄을 즐기고 있다. 이곳 동백꽃은 4월 중순까지 화려한 봄을 밝힌다.
 
비인면 선도리 해변의 하트 모양 조형물 사이로 보이는 쌍도.
 
판교면 현암리 ‘서천 판교마을’에서 만난 근대 풍경.
 
장항 솔숲과 해변에 15m 높이로 조성된 스카이워크. 구멍 뚫린 철망 바닥이 아찔하지만 탁 트인 전망이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문헌서원


동백은 겨울과 봄에 걸쳐 꽃을 피운다. 3월에 왕성하게 개화해 4월 절정에 이른다. 육지에서 동백나무의 북방한계선은 충남 서천이다. 500년 된 동백나무숲이 천연기념물(제169호)로 지정돼 있다. 봄철 서천에서는 주꾸미 축제가 열린다. 오가는 길에 만나는 옛 정취 간직한 풍경도 흥미롭다. 멋과 맛이 어우러진 서천이 상춘객을 부른다.

서면 마량포구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마량포는 서천군 북서해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마량동백나무숲이 있다. 바닷가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 잡은 아담한 정원 같은 숲과 탁 트인 바다 전망이 일품이다.

마량 동백숲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마량의 수군첨사가 꽃 뭉치를 증식시키면 마을에 웃음꽃이 핀다는 꿈을 꾸고, 바닷가에 나가 꿈에서 봤던 꽃이 떠다니기에 심었더니 그게 바로 동백이란다. 숲은 바닷가의 방풍림 역할을 하며 봄날의 화려함을 불태운다.

입구에서 평지를 따라 걷다가 계단을 따라 오르면 동백숲이 양옆에서 호위한다. 정원수처럼 잘 다듬어진 동백나무에서 송이째 ‘톡’ 떨어진 꽃들이 땅 위에서 처연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붉은 융단을 깔아놓은 듯 환상의 꽃길을 내어놓는다. 꽃을 배경으로, 꽃 속에 묻혀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도 모두 꽃이 된다.

해풍에 시달려온 동백나무는 키를 키우지 못했다. 고목들이라도 2∼3m가량이다. 옆으로 퍼져 자라나면서 나무 밑으론 어둑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송이째 떨어져 내린 동백꽃송이들이 그 어둠을 밝혀준다.

언덕 위에 2층 누각인 동백정이 우뚝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황홀하다. 바로 앞 바다 위에 섬이 그림처럼 떠 있다. 오력도다. 옛날 어느 장수가 바다를 건너다 빠뜨린 신발 한 짝이 섬이 됐다고 한다. 동백정의 붉은 기둥 사이로 보는 풍경이 멋스럽다.

서천 홍원항과 마량포에는 졸깃졸깃하고 오동통한 봄맛이 넘쳐난다. 주꾸미가 대표다. 주꾸미는 일년 내내 잡히지만 산란기(5∼6월)를 앞둔 3∼4월에 가장 맛있다. 몸통 속에 밥알 같은 알이 꽉 차 있어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봄 주꾸미, 가을 전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특히 마량 앞바다의 갯벌에는 미네랄이 풍부해 이곳 주꾸미의 맛을 배가시킨다고 한다.

이제 아름다운 해변과 싱싱한 솔숲을 자랑하는 장항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비인면 월하성 포구와 선도리 갯벌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월하성은 ‘달 아래 성’이란 뜻이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 비치는 달빛만큼이나 아름답다는 얘기다. 이곳에서 다소 생경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어선들이 트레일러 위에 얹힌 채 주차장 여기저기에 있다. 트레일러를 끄는 건 경운기와 트랙터다. 경운기의 모습도 색다르다. 엔진 부위를 들어 올린 모양이다. 트레일러에 실린 어선을 바다로 끌고 들어가 띄우기 위한 ‘튜닝’이다.

월하성 포구 다음에 선도리 갯벌이다. 깨끗한 갯벌과 아름다운 낙조로 유명하다. 갯벌 앞에는 무인도 2개가 나란히 떠 있다. 쌍도다. 안내판에 애절한 전설이 적혀 있다. 오래전 선도리 갯벌 주변은 너른 해당화밭이었다. 오월이 되면 해당화꽃 향기가 수십 리 밖까지 퍼지며 수많은 청춘남녀들을 끌어들였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과 천석꾼의 외동딸이 사랑에 빠졌다. 부모의 반대에 둘은 다음 생을 기약하며 바닷물에 몸을 던졌고, 용왕이 이들의 사랑에 감동해 섬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썰물이면 쌍도로 이어지는 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섬을 한 바퀴 돌면 사랑을 이어갈 수 있다는 얘기에 연인들이 즐겨 걷는다. 갯벌에서 봄을 캐는 아낙네의 모습이 정겹다. 해 질 무렵 풍경이 빼어나다. 지는 해가 하늘도, 바다도 온통 붉게 물들인다.

장항에 20m 정도 되는 키 큰 소나무들이 1㎞ 정도 이어져 있다. 솔숲 위로 높이 15m 길이 236m짜리 스카이워크가 지난다. 솔향기를 맡으며 하늘을 걷는 ‘솔밭 위 산책’이 가능하다. 바다 풍경은 금상첨화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서자 평평하게 이어진다. 구멍 뚫린 철망 바닥이 아찔함을 더한다. 고소공포증이 없는 이들도 괜히 심장이 쫄깃해진다. 끝은 전망데크다. 금강하구와 서해, 장항제련소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탁 트인 전망이 가슴까지 시원하게 뚫어준다.

서천에서 시간을 거슬러 여행할 수 있는 장소도 있다. ‘서천 판교마을’로 불리는 판교면 현암리는 근대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작은 마을이지만 옛것을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 등의 촬영지였던 사진관과 100년 넘은 양조장, 정미소 등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나 1950∼70년대에 지어진 고색창연한 낡은 건물들이 영화 세트장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좀 더 과거로 여행하고 싶다면 기산면 영모리 문헌서원을 찾아보자. 고려 말 대학자인 가정 이곡 선생과 목은 이색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1576년 지어졌다. 문헌서원 액호는 우암 송시열이, ‘진수당’ ‘존양제’ 등의 액호는 동춘당 송준길이 썼다고 전해진다.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헐렸다가 100여 년이 지난 1969년 재건됐다. 호텔, 식당 등 부대공간을 갖추는 방식으로 다양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서원 입구 좌측에 신축한 전통한옥 ‘문헌전통호텔’에서 각종 체험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 호텔 옆 전통음식전문점 ‘문헌전통밥상’에서 전통 장류와 서천지역에서 생산되는 신토불이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만든 맛깔나는 한식을 즐길 수 있다.

문헌서원에서 멀지 않은 한산면 종지리에 민족의 사표로 추앙받는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가 있다. 이상재 선생은 청년기까지는 과거 공부를 했던 유학자였으나, 개화파 관리인 박정양을 만나면서부터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개화사상가로 변모한다. 이후 박정양이 조사시찰단으로 일본에 갈 때 수행원으로 따라가 일본의 개화 문물을 시찰했으며 박정양이 초대 주미공사로 갈 때는 서기관으로 동행했다. 서재필의 독립협회 창립에 참여하고 자주민권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초가집으로 된 안채와 사랑채가 복원돼 충남도기념물 제84호로 관리되고 있다. 1986년 서울 강남 YMCA회관에 세워진 이상재 선생 좌상이 지난 1월 30일 이곳에 이전 설치됐다. 옆에는 유물을 전시하는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 나들목에서 30분 거리 마량포구…
내달 1일까지 ‘서천 동백꽃 주꾸미 축제 ’


수도권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춘장대 나들목에서 빠져 21번 국도와 607번 지방도를 30분쯤 달리면 동백정과 마량포구, 홍원항 일대에 닿는다. 월하성 포구와 선도리 갯벌은 마량포구에서 10여분, 판교 근대마을은 20여분 거리다. 장항스카이워크는 마량포에서 해안로를 이용해 남쪽으로 40여분 가면 된다. 장항스카이워크부터 간다면 동서천 나들목이 빠르다.

서천 동백꽃 주꾸미 축제가 지난 17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마량포구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홍원항에 횟집이 즐비하고, 마량포구에도 여러 집 있다. 대부분의 횟집에서 샤브샤브·볶음·전골 등으로 주꾸미 요리를 낸다. 홍원항 인근 서산회관(041-951-7677)은 주꾸미철판볶음요리가 유명하다. 판교면 소재지 현암리의 먹거리는 냉면과 콩국수다. 수정식당(041-951-5573)의 냉면이 맛깔스럽다.

장항스카이워크 입장료는 2000원이다. 같은 금액의 지역 상품권으로 돌려준다. 서천 시내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문헌서원(사진)에서 고택체험(041-953-5895)을 할 수 있다. 개별과 단체숙박이 가능하다. 일부는 전통 온돌인 구들로 만들어 장작을 지펴 난방하고 있어 도시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서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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