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상상력은 위대하다



저녁 일곱 시 이후로 안 먹으려고 했는데 그만 먹고 말았네. 내 말에 M이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뭘 먹었는데?” 시카고피자를 먹었는데 도우가 좀 특이하더라고, 도우까지 다 먹게 되던데. 치즈도 좋은 거 쓴대. 별로 느끼하지도 않고. 먹는 시늉만 하려고 했는데 그게 되나. 제일 열심히 먹은 1인이야 내가. M은 내 말에 몰입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장 그를 찾아갈 사람처럼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M은 다이어트 중이었는데 이런 질문들이 마음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사람들한테 어제 뭐 먹었는지 물어본다니까. 맛있었는지 어땠는지 들으면서 대리만족해. 그러면 나도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뇌로 먹는 거지.”

M은 먹방을 보면서 다이어트를 하는 심리를 예로 들었다. TV에서 라면만 봐도 따라 끓이는 나로서는 얼른 이해하지 못했는데, 얘기를 듣고 보니 좀 알 것도 같았다. 대놓고 먹는 것을 보여주면 오히려 ‘눈으로’ 따라 먹게 되는 것이다. 핵심은 ‘구체화’에 있는 것 같다. 맛있게 먹는 장면을 몇 단계로 쪼개고 쪼개면 우리 뇌는 그 정보들을 따라가기가 쉬워지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먹은 기분을 느끼는 경지에 이르게 하니까. 생각해보면 독서와 비슷한 것이다. 한 줄 한 줄 상상하는 동안 우리 몸이 데워진다.

지난겨울 엄마를 위해 필라테스를 끊어드렸고, 처음에는 수업이 괜찮은지 어떤지 확인용 질문을 했을 뿐인데 그러다 차차 다른 의도가 올라타게 됐다. 엄마 오늘 운동하는 날이었네? 어떤 동작을 했어? 땀이 나?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고? 어머나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고? 운동하기를 싫어하면서 운동효과는 느끼고 싶은 나는 여기 웅크리고 앉아서 그렇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저쪽에서 “뭘 먹었니, 맛이 어땠니”를 물으며 포만감을 느끼는 동안, 여기 또 한 사람은 “어떤 동작을 했어, 효과가 있는 것 같아”를 물으며 운동효과를 느끼는 것이다. 물론 M의 경우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내 경우엔 안 된다는 차이가 있지만.

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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