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DNA 되살리자] 가이드러너와 장애인러너, ‘평창 완주’로 도전 1막 완성

가이드러너 고운소리(왼쪽)씨와 양재림 선수가 지난 14일 강원도 정선군 알파인스키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여자 알파인스키 시각 장애 대회전에서 활강하고 있다. 평창군청 제공
 
셀카 속 고운소리(왼쪽)씨와 양재림 선수. 고운소리씨 제공
 
권상현 선수가 지난 13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바이애슬론 남자 12.5㎞ 경기에서 질주하고 있다. 평창군청 제공
 
권상현 선수가 평상복을 입은 모습. 나사렛대 제공


‘노르딕 스키’ 권상현
태어날 때부터 팔 신경 손상… 수 차례 수술에도 호전 없어 스키캠프 계기로 새 인생
반대하던 부모도 지지자로 “특수체육 지도자가 꿈”


‘슈퍼대회전’ 고운소리
12년 동안의 선수생활 3년 전 접고 가이드러너로… 양재림씨 만나 새 도전 시작
양씨, 슈퍼대회전서 9위그쳐 “도전정신 잊지 않을 것”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은 역경에 굴하지 않고 삶을 지속한 위대한 도전자들의 무대였다.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다. 도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참가자들의 고백은 울림이 돼 감동을 줬다. 국민일보는 패럴림픽에 참가한 두 명의 선수에게 도전의 의미를 물어봤다.

알파인스키 가이드러너 고운소리씨

알파인스키 슈퍼대회전(시각장애)이 열린 지난 11일 강원도 정선 알파인경기장. 흰 눈을 가로지르던 가이드러너 고운소리(23)씨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당황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고씨는 급하게 속도를 줄였다. 뒤따라오던 양재림(29) 선수와의 간격이 지나치게 벌어진 탓이다. 가이드러너는 선수보다 정확히 한 게이트(기문)만큼 앞서 가면서 코스의 변화를 구호로 알려줘야 한다. 박자가 어긋나 선수가 코스를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씨는 1분43초를 기록하며 9위로 피니시 라인을 무사히 통과했다.

고씨는 23일 “가이드러너로서 저의 목표는 선수를 도와 완주하는 거다. 완주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라고 했다.

고씨도 과거에는 결과에만 목을 맸었다. 고씨는 2015년, 12년간의 선수 생활을 접고 가이드러너로 전향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선수 생활을 했지만 대학에 진학할 때쯤 회의감에 빠졌다. 더 이상 스키를 즐기기만 할 수 없었고 성적은 생각만큼 나와 주지 않았다. 번번이 국가대표 상비군에 그쳤다. 후배와의 경기에서 질 때면 위기감이 들었다. 고씨는 “국가대표에서 떨어질 때마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바친 스키를 등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마침 고씨와 같이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양씨가 새 가이드러너를 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이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해보자고 다짐했죠.”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합격 소식을 받아든 그는 바로 가이드러너 훈련에 돌입했다.

훈련은 도전하는 과정 그 자체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선수 때는 나 혼자 잘하면 되는 싸움이었지만 가이드러너는 함께 달려야 하거든요. 무작정 피니시 라인을 빨리 통과하는 것보다 언니를 잘 도와서 완주하는 게 더 중요한 거죠.”

쉽진 않았다. 가이드러너는 1㎞가 넘는 코스를 빠짐없이 외우면서도 선수의 속도에 맞춰 실수 없이 주행해야 한다.

2016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양씨의 정강이가 부러져 10개월간의 훈련 공백이 찾아왔다. 하지만 고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양씨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갔다. “우리 평창만 보고 달리자”며 서로 의지를 북돋았다. 고씨는 “평창 패럴림픽에 무사히 출전한 건 당시 인고의 시간이 있었던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번 패럴림픽에서는 슈퍼대회전에서 9위에 그쳤고, 슈퍼복합전에서는 양씨가 코스를 이탈하면서 실격했다. 하지만 고씨는 “도전이 항상 성적으로 보답되는 건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언니와 제가 최선을 다해 만족할 만한 경기를 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게 도전을 통해 배운 교훈이다.

양씨는 이번 패럴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고씨는 “가이드러너를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슨 일을 하든 도전 정신만큼은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노르딕스키 국가대표 권상현

세상의 빛을 처음 본 날 갓 태어난 아기는 예기치 못한 시련과 마주했다. 분만과정에서 의료진의 실수로 한쪽 팔의 신경이 손상됐다. 왼쪽 어깨 아래로는 감각을 느끼지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 수업시간에 만들기를 하면 대부분 중도에 포기했다. 한 손으로는 도저히 완성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놀리는 친구는 없었지만 자책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향한 실망은 점점 커졌다.

죽은 신경을 살리기 위해 수차례 수술도 받았다. 입원이 잦았고,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은 적었다. 성격도 내성적으로 변했다.

퇴원 후에도 부모는 아들이 다칠 까봐 외부활동 하는 것을 자제시켰다. 수업만 들을 뿐 집 밖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주로 컴퓨터 게임을 했다.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활동량이 적다보니 몸무게는 급격히 늘었다. 중학교시절 키 167㎝ 몸무게 119㎏으로 초고도비만 진단을 받았다.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았어요. 별다른 꿈도 없었죠.” 권상현(21)씨는 2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담담히 지난날에 대해 털어놨다.

그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 참가한 노르딕스키 한국 국가대표 선수다. 도전은 평소 권씨를 아끼던 이의 한마디와 함께 찾아왔다.

“스키캠프에 가볼래?”

중학교 때 담임을 맡았던 체육교사 조삼현씨가 권했다. 마침 권씨 고향인 전남 무주군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강좌도 있었고, 그가 졸업한 무주안성중고등학교도 바이애슬론 선수를 양성하고 있었다.

“희망이 없어 낙심해 있던 제게 선생님이 길을 제시해 준 거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살을 빼야 스키를 탈 수 있었기에 체중감량을 시작했어요.”

학교 운동장에서 무작정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식사량도 줄였다. 몇 달이 지나고 25㎏ 감량에 성공했다. 스키캠프에 참여하겠다는 아들의 말에 부모는 극렬히 반대했다. 권씨는 가출하다시피 캠프에 참가했다.

한손에만 폴을 들고 균형을 잡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점차 재미를 느꼈다. “차갑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처음 달렸을 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희열을 경험했습니다.”

재미는 진로 결정에도 결정적 영향을 끼쳤고, 권씨는 스키 선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슬로프를 활강하는 알파인 스키는 다소 위험한 감이 있어서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등 노르딕스키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아들의 설득 끝에 부모는 마음을 돌리고 적극 지지자로 나섰다.

마라톤처럼 장시간을 소비하며 눈밭을 헤치다보니 체중은 현저히 줄었다. 권씨는 현재 신장 175㎝에 체중 75㎏이다. 적성에 맞고, 재미도 느낀 덕에 실력은 쑥쑥 늘었다. 권씨는 2014년 전국체전에서는 노르딕스키 부문 2관왕에 올랐고 국가대표에도 발탁됐다.

권씨는 이번 패럴림픽에서 바이애슬론 12.5㎞ 입식과 크로스컨트리 20㎞에 출전해 각각 12위를 기록했다. 지난 16일 바이애슬론 입식 경기에, 폐회식 날인 18일에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10㎞ 오픈 릴레이 경기에도 출전했다.

권씨는 “신세한탄만 하던 제가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재능을 발견하도록 도와준 선생님, 믿고 지지해 준 가족 덕분”이라며 “언젠가는 저처럼 장애가 있는 청소년들에게 도전을 가르치는 특수체육 지도자가 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도전이다.

이사야 이재연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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