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태용] 제목으로 말해요



학생으로 만나 후배가 된 두 명의 소설가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두 친구 모두 첫 소설책을 준비 중이었고, 한 친구의 가방에는 곧 출간될 교정 원고가 있었다. 한 친구는 M, 다른 친구는 Y라고 하자. “제목은 정했어?”라고 묻자 Y가 봉투 속에 들어 있는 원고를 꺼내 보이며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Y가 문학적 고집을 부리며 지은 제목은 ‘사살 없음’이었고, 나도 모르게 ‘확인 사살’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어서 말장난이 반복되다가 ‘감상소설’로 의견이 모아졌다. 전혀 감상적이지 않은 Y의 소설에 대한 문학적 아이러니를 드러낼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면서도 뭔가 더 좋은 제목이 있지 않을까 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 사이 M이 나는 무조건 첫 책의 제목은 ‘버티고’라고 할 거야라고 말했다. ‘버티고 안 돼!’ Y와 내가 거의 동시에 비슷한 말을 던졌고, 결국 왜 우리는 ‘사랑’ ‘산책자’ ‘백치’ 같은 제목을 지어서는 안 되나라는 푸념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대화 사이사이에 학교 문제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학교 문제와 학생들의 시위와 집회 그리고 교수들과 졸업생들의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다. 이 혼란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무거운 질문들이 머리와 마음을 눌렀다. 학생들의 평화롭고 용기 있는 집회를 보고 몇몇 교수들이 힘을 모아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를 같이 쓰면서 가장 고심을 한 부분 역시 제목이었다. 보다 명료하고 예술대학이라는 것을 드러낼 수 없을까, 하는 고민과 말들이 이어졌지만 모 교수님의 일갈 같은 제안이 선생들의 마음에 꽂혔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학생들을 위한 것이지요. 학생들과 함께 가자고 합시다.’ 결국 성명서의 제목은 ‘우리는 학생들과 함께합니다’가 되었다. 헤어지기 전 M과 Y는 나의 손과 팔을 잡으며 말했다. ‘지치지 마세요.’ 밤바람에 우리가 나눴던 무수한 제목들이 흩어져 버리겠지만 ‘감상소설’과 ‘버티고’ ‘우리는 학생들과 함께합니다’ 사이에서 어떤 가능성의 에너지가 온몸을 감싸며 돌고 있었다.

김태용(소설가·서울예대 교수)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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