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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봄 수놓인 돌담길 따라 추억 속으로…

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의 고풍스러운 돌담 위에 산수유가 노란 꽃을 피워 봄을 재촉하고 있다. 마을 입구 140여 그루의 소나무 숲이 운치를 더한다.
 
소박한 역사와 증기기관차용 급수탑 등 옛 모습을 간직한 산성면 화본역 상행 선로에 무궁화 열차가 들어서고 있다. 급수탑은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조선 숙종 때 화산에 축성된 화산산성 홍예문(위 사진). 지난 시절 볼거리로 채워진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아래 사진).
 
두껍고 육중한 단애가 병풍처럼 펼쳐진 학소대.




경북의 중앙부에 위치한 군위군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 우리 민족의 전통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고 속도도 더딘 고장이어서 역사와 추억이 살아 숨 쉰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북적대는 유명 여행지에서 벗어나 한적하고 고즈넉한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군위를 찾아볼 만하다.

대구와 경산을 수식어처럼 달고 있는 팔공산의 북측 자락 군위 팔공산에는 대도시의 떠들썩함에서 벗어난 또 다른 모습이 숨겨져 있다. 대구 쪽에서 팔공산 허리로 연결되는 구불구불한 한티재를 넘어가면 바로 천년 전통의 ‘한밤마을’이 깃들어 있다.

군위군 부계면에 있는 한밤마을은 시간이 멈춘 듯 나지막한 돌담이 집들을 둘러싸고 있다. 높낮이를 달리하며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져 마을 전체를 휘감은 돌담은 아름답다 못해 가슴까지 시리게 한다. 척박한 자연환경을 삶의 터전으로 가꾸기 위해 담을 쌓았을 선조들의 고통이 전해오는 듯하다.

한밤마을의 유래는 이렇다. 950년쯤 남양 홍씨에서 분파된 부림 홍씨의 시조 홍란이란 선비가 입향하면서 마을은 시작된다. 마을은 본래 심야(深夜) 또는 대야(大夜)라고 불리던 곳이다. 대낮에도 밤처럼 어두운 심심산골 오지여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된다.

1390년쯤 부림 홍씨 14대손인 홍로 선생이 마을 이름에 ‘밤 야(夜)’자가 들어간 것이 역학적으로 좋지 않다고 해서 대율(大栗)로 고쳤다고 한다. 이후 한밤으로 불리게 됐다.

팔공산에서 시작된 작은 물줄기는 마을 위에서 남천과 동산천으로 갈린다. 비가 오면 산에서 수많은 돌이 흘러내렸다. 마을 앞 하천으로 굴러온 돌들을 차곡차곡 쌓아 담을 만들었다. 땅을 일구고, 집터를 닦으면서 나온 돌도 담에 보태졌다. 돌담길이 많은 제주도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육지 속의 제주도’로 불린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돌담 사이로 타박타박 걷다 보면 돌담이 속삭이는 옛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마을 여행의 시작은 성안숲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름드리 소나무 140여 그루가 숲을 이뤄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전국 10대 마을숲’에 포함됐다. 임진왜란 때는 홍천뢰 장군의 훈련장으로 사용된 장소이기도 하다. 장군의 기념비와 진동단, 효자비각 등이 숲 안에 있다.

성안숲을 지나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총연장 4㎞(10리)가 넘는 돌담길이 나온다. 돌담은 사시사철 옷을 갈아입는다. 봄을 맞아 푸른 이끼가 기어오르고, 노란 산수유가 담 위를 물들이고 있다. 가을에는 붉은 산수유 열매와 노란 감이 담을 넘어온다.

마을 중심에 노래헌(老來軒)이란 현판이 붙은 널찍한 대청(大廳)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랜 기간 마을 교육기관인 학사로 쓰였다고 한다. 지금은 동네 사랑방과 여행객들의 휴게소 역할을 하고 있다. 여름밤엔 음악회가 열린다. 대청 뒤에는 300년이 넘은 덩치 큰 잣나무 두 그루가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고 오롯이 서 있다.

대청과 이어진 한쪽에는 남천고택(南川古宅)이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함이 묻어난다. 옛 안주인의 이름을 따 ‘상매댁’이라고도 불린다. 마을에 있는 100년 이상 된 한옥 20채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집이다. 조선 후기인 1836년 지어진 뒤 광복 후 일부 허물어지고 지금 대문채와 사랑채, 안채, 사당 등이 남아 있다. 고택 안에 ‘잣나무 백’(柏)자를 써서 붙여진 ‘쌍백당’도 있다.

한밤마을에서 약 10㎞ 떨어진 산성면에 꽃뿌리처럼 아름다운 화본마을이 있다. 마을 동쪽 조림산(638m)을 ‘산은 꽃의 뿌리와 같으므로 꽃의 근본이다’는 뜻의 ‘산여화근고화본(山如花根故花本)’으로 표현한 데서 이름을 따왔다. 지나간 세월의 흔적과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이다.

마을 옆에 기찻길이 놓여 있고 거기엔 단출하고 소박한 간이역이 있다. ‘누리꾼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역이다. 1938년 보통 역으로 영업을 시작할 당시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역 건물과 증기기관차용 급수탑이 남아 있다. 서울 청량리와 부산 부전을 연결하는 중앙선 선로에 요즘도 상하행선을 합해 하루 4차례 열차가 선다.

화본역을 둘러본 여행객들의 발길은 200m 남짓 떨어진 역 맞은편 언덕으로 향한다. 2009년 폐교한 산성중학교를 1960∼70년대 생활상을 더듬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추억박물관이다. 이름도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다. 투박한 나무 책걸상과 풍금이 놓인 교실부터 옛날식 음악다방·연탄집·구멍가게까지 그 시대 정경이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시간여행지’다.

군위는 ‘삼국유사’의 고장이다.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했던 인각사가 있다. 그 옆에는 ‘학소대’가 자리한다. 두껍고 육중한 단애가 직립으로 병풍처럼 둘러 있다. 옛날 학들이 이 벼랑에 둥지를 틀고 살았다고 한다. 아래에는 위천(渭川)이 흐르며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인각사는 화산(華山)에 있으며, 동구에 바위 벼랑이 우뚝한데, 옛말에 기린(麒麟)이 이 벼랑에 뿔을 걸었으므로 그렇게 이름 붙인 것으로 전한다’고 기록돼 있다. 화산(828.1m)이 기린을 닮았다고 한다. 차로 올라서면 산이 아니라 넓은 들을 만난다. 1960년대 임야를 개간해 밭을 만들고, 그 밭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다. 하늘 아래 첫동네 ‘화북4리’다. 계절마다 다른 고랭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안개나 구름이 살짝 낀 늦은 아침이라면 선계가 따로 없다.

산 일대에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산성이 축성됐다. 1709년(숙종 35년) 윤숙(尹淑)이 병영을 건설하고자 4문의 기초공사를 시작해 홍예문 등을 지었다. 홍예문에서 수구문에 이르는 거리 200m, 높이 4m, 너비 5m의 성을 축조하던 중 심한 흉년과 질병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북문터에 아치 모양의 홍예문이 남아 있다. 북문댐에서 5분만 오르면 닿는다.

■ 여행메모
'아름다운 길' 팔공산 한티재 드라이브… 항아리 수제비·장떡 '간단·든든' 별미


경북 군위 여행은 남쪽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지난해 6월 개통한 상주영천고속도로 동군위나들목을 이용하면 빠르지만 중앙고속도로 다부나들목에서 빠져 5번 국도를 타고 가다 학명리에서 팔공산도립공원 방향으로 좌회전해 한티재를 넘어가는 것이 여행에 운치를 더한다.

왕복 2차선의 구불구불한 도로 양편으로 숲이 우거져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꼽혔다. 한티재는 아래에 터널이 뚫리고 4차선 도로가 개통돼 더욱 한적하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군위읍 서부리에 있는 사라온 이야기마을, 부계면 동산리 팔공산 하늘정원, 고로면 석산리 산촌생태마을 등 군위 자연과 생활터전을 엿볼 수 있는 관광지가 널려 있다.

한밤마을 안에 남천고택(054-382-2748·사진), 부림홍씨종택(054-382-2651) 등에서 고택체험이 가능하다. 석산약바람산촌생태마을(054-383-0468)에서도 숙박을 할 수 있다. 군위군이 운영하는 장곡자연휴양림(054-380-6317)은 천연숲이 우거져 하루 묵고 가기 좋다.

'제2 석굴암'으로 불리지만 경주 석굴암보다 100년 앞서 조성된 군위 삼존석굴로 들어서는 길에 식당들이 몰려 있다.

오리·닭 백숙과 보쌈 등 푸짐한 요리를 내놓는다. 간단한 것을 원하면 항아리 수제비와 장떡을 고르면 된다. 감자·단호박 등을 같이 넣고 끓인 수제비에 양념장을 더하면 담백하다. 된장·고추장으로 간을 맞춘 불그스름한 장떡도 배를 든든히 한다.

한우도 유명하다. 군위에서 키운 소를 현지 도축장에서 잡아 뛰어난 신선도를 자랑한다. 한우곰탕과 육회비빔밥이 군침을 돋운다.

군위=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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