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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바람이 일렁… 내 마음은 출렁

전남 여수시 하화도 꽃섬다리 위로 저물어가는 해가 황홀한 석양빛으로 주변을 물들이고 있다. 다리는 길이 100m, 폭 1.5m, 높이 70m 정도로 기암절벽을 연결하며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한 풍경을 펼쳐놓는다.
 
꽃섬다리 아래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는 큰굴
 
하화도에서 바다 건너 본 상화도
 
하화도 최고 전망을 자랑하는 막산전망대(위 사진). 하화도 선착장 인근 마을에 그려진 벽화(아래 사진).




전남 여수는 365개의 보석 같은 섬을 자랑한다. 거문도, 금오도 등 우리나라 섬 여행지로 손꼽히는 곳이 여럿이다. 이름난 섬들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다 최근 관광객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진 섬도 있다. 화정면 하화도(下花島)가 대표적이다.

화도(花島)는 꽃섬을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다. 윗꽃섬인 상화도(上花島)와 아랫꽃섬인 하화도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주민은 상화도에 많지만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은 풍경이 빼어난 하화도다.

하화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때라고 전해진다. 선조 25년(1592년) 왜군이 쳐들어오자 가족과 함께 뗏목을 타고 피란을 가던 인동 장씨 일가가 동백꽃과 진달래가 우거진 이 섬에 은신하기 좋아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고 한다. 전선(戰船)을 타고 지나던 이순신 장군이 꽃이 활짝 핀 아름다운 섬이라 해 화도로 명명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주민들에 따르면 30∼40년 전까지도 하화도는 동백과 구절초(선모초), 진달래 등으로 덮여 있었다. 꽃이 사라진 건 외부인들이 약으로 쓴다며 마구잡이로 채취해 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동안 ‘꽃 없는 꽃섬’이 됐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꽃가꾸기 사업이 진행되고 둘레길과 야생화공원 등이 만들어지면서 다시 이름값을 하고 있다. 봄이면 동백꽃·유채꽃·진달래 등이, 가을이면 구절초 등이 섬을 가득 채운다.

섬은 송일곤 감독의 2001년 영화 ‘꽃섬’의 배경지다. 깊은 절망의 나락에서 운명처럼 만난 세 명의 여자가 자아를 찾아 떠나는 로드무비다. 자신이 낳은 아기를 화장실에서 버린 17세 혜나, 뮤지컬 가수로서 전성기를 보내다 후두암 진단을 받은 20대 유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춘을 시작한 30대 옥남이 세상의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 여정에서 만난 세 여인은 동병상련으로 서로 이해하고 가슴 깊이 긁힌 상처를 어루만지며 마침내 자신을 버린 세상과 화해해 나간다.

백야도를 출발한 카페리는 미끄러지듯 바다를 가른다. 눈이 부실 정도로 파란 바다는 호수같이 잔잔하다. 그 물결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윤슬이 눈부시다. 다도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들이 인사를 건넨다.

하화도는 굽 높은 여성 구두(하이힐)나 복조리를 닮았다. 복조리의 손잡이가 연결되는 부분이 선착장이다. 주황색 지붕으로 덮인 마을에는 소박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다정하고 따뜻한 느낌을 전해준다. 벽화에 적힌 ‘섬’이라는 시에서 ‘누구든 캐내지 않는 바위처럼 누구든 외로워’라는 문구가 가슴에 와 닿는다. 반가운 이름표도 눈에 띈다. ‘범죄 없는 마을’. 몇 가구 안 되는 마을에서 범죄를 짓고 도망갈 곳도 없을 듯하다. 마을 뒤편에 1988년 4월 국내 처음으로 세워진 태양광발전소가 자리한다.

선착장에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아늑한 숲길과 바위절벽이 이어지는 해안, 그리고 아담한 마을 풍경이 어우러져 걷는 맛을 돋워준다. 코스는 세 갈래로 나뉘지만 하화도 꽃섬길의 비경인 큰굴, 막산전망대, 깻넘전망대를 서둘러 만나고 싶다면 섬의 북쪽 해안길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하화도 선착장에서 600m 정도 몽돌해변이 이어진다. 오랜 세월동안 파도가 조탁해 만들어놓은 것이다. 몽돌과 바닷물이 연주하는 낮은 해조음이 귓전을 간질인다. 몸도 마음도 맑아진다.

바다 건너편에는 상화도가 동행한다. 상화도 면적은 0.76㎢로 아담하다. 약 380년 전 임진왜란 전후로 전남 고흥에서 살던 성주 배씨가 가장 처음 입도한 뒤 김씨와 박씨가 섬으로 들어와 마을을 형성했다는 유래가 있다. 1896년 돌산군 설립 당시에는 화개면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옥정면과 화개면을 합해 화정면 상·하화도로 나뉘었다.

애림민야생화공원을 지나 산길을 오르면 거대한 출렁다리가 눈앞에 다가선다. 이름도 예쁜 ‘꽃섬다리’다. 70m 정도 높이의 기암절벽이 마주보는 협곡에 길이 100m, 폭 1.5m 규모로 설치됐다. 다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짙푸른 바닷물이 아득히 일렁인다. 그곳에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는 큰굴이 눈에 들어온다. 강렬하고 압도적이다. 옛날에 밀수꾼들의 비밀장소로 활용됐다고 전해진다.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작은 나무들이 강한 생명을 보여준다.

다리에서 서쪽으로 산길을 오르면 하화도에서 최고 전망을 자랑하는 막산전망대다. ‘막산’은 섬 끝부분에 자리한 마지막 산이라는 뜻이다. 바로 앞 장구도와 오른편 상화도, 그 뒤편 사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멀리 고흥 나로도가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그 옆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한쪽에 관광객들이 남겨놓은 기원문들이 걸려 있다. 나무의자도 놓여 있어서 차분히 앉아 지친 일상을 풀 수 있다.

되돌아와 다리를 건너 동쪽 산길을 오르면 깻넘전망대와 큰산전망대로 이어진다. ‘깻넘’은 깨를 심은 밭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했던 고개라는 뜻이고, ‘큰산’은 하화도에서 가장 높은 곳(118m)이다. 깻넘전망대와 큰산전망대를 잇는 나무데크 길은 하화도 남쪽 바닷가 울퉁불퉁한 벼랑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바다는 파도를 섬에 보내 오랜 세월 동안 갈고 다듬어 아름다운 해안을 빚어냈다. 기암절벽이 천하절경을 자랑한다. 멀리 개도·금오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큰산전망대를 지나면 ‘순넘밭넘 구절초공원’을 지나게 된다. ‘순넘밭넘’은 ‘순’이라는 사람의 밭이 있던 고개라는 뜻이다. 가을이면 한껏 그 이름을 뽐낼 것 같다. 구절초공원에서 야생화공원으로 내려서는 길옆 매실나무밭에는 매화가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여행메모

백야선착장에서 30여분… 왕복 1만2천원
하화도 꽃섬길 트레킹 5.7㎞ 3시간 소요


하화도 가는 배는 여수 여객선터미널(061-665-6565)과 백야선착장(태평양해운 061-686-6655)에서 이용할 수 있다. 백야선착장은 백야대교 개통 이후 육지나 다름없지만 여수 남단에 위치해 시내에서 멀다. 시내에서 40분쯤 걸린다. 대중교통으로 여수에 간다면 여수 여객선터미널에서 가는 것이 편리하다. 하지만 시간이 좋지 않다. 여수 여객선터미널에서는 오전 6시, 오후 2시 들어가는데 1시간 10분가량 걸린다. 백야선착장에서는 오전 8시, 11시 30분, 오후 2시 50분 출발하는데 개도를 거치기 때문에 30∼40분 소요된다. 주말에는 개도를 거쳐 하화도만 오가는 배편이 편성된다. 요금은 왕복 1만2000원.

하화도로 들어가는 배는 카페리로, 차량을 실을 수 있지만 섬이 워낙 작아 비싼 차량운임을 들여 갖고 갈 필요가 없다. 백야선착장에 무료주차장이 넓게 마련돼 있어 이곳에 주차하면 된다.

하화도를 한 바퀴 도는 꽃섬길은 5.7㎞ 거리에 3시간 정도 걸린다. 선착장→낭끝전망대→시짓골전망대→순넘밭넘구절초공원→큰산전망대→꽃섬다리→막산전망대→야생화공원→선착장 코스를 따라 돌면 된다.

하화도엔 식당과 민박을 겸한 집이 몇 군데 있다. 와쏘식당(010-9281-2461)에서 서대회무침, 부추전을 먹고 식사와 민박을 할 수 있다. 꽃섬길펜션식당(061-666-5892)은 우럭매운탕과 백반정식 등을 내놓고 숙박도 제공한다.

하화도(여수)=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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