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태용] 봄이 오면 산에 들에



며칠 전부터 입에 달라붙은 멜로디가 있다. 바로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라고 시작하는 노래다. 여전히 한겨울 내내 걸치고 있던 옷들을 입고 다니곤 하지만 낮에 거리를 걷거나 실내로 들어오는 햇볕 속에 있으면 봄이 오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된다. 새 학기가 시작돼 다소 분주하고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가운데 나의 이성과 지각과 달리 몸이 먼저 봄을 찾고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의 높낮이 없이, 입 모양의 큰 변화 없이 새어나오는 봄의 멜로디가 유년의 어떤 기억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경기도에 살던 어린 시절의 어느 봄날, 어머니와 나는 들판에서 나물을 뜯고 있었다. 새로 전학 와 친구도 없고, 서울에서 왔다고 따돌림을 받기도 해서 풀 죽은 얼굴로 유년의 외로움을 학습하던 시절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과 저물어 가는 햇빛 속에서 무뎌진 칼날을 들고 어머니가 일러주는 대로 땅을 파면서 나물을 뜯고 있었다, 라기보다는 그저 칼로 부드러운 땅의 속살을 후벼 파면서 무료함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날 어떻게 들판으로 갔는지, 어떻게 돌아왔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풍경과 멀리서 나물을 뜯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몇 장의 그림처럼 남아 있다.

어릴 적 우리가 뜯던 나물은 무엇이었어요? 어머니를 만나 식사를 하다가 불쑥 물어보고 말았다. 냉이와 쑥 정도는 나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기억을 더듬어 나물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씀바귀, 꽃다지, 꼬리뱅이, 황새냉이라는 이름들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빠져나왔다. 거기가 들판이었나, 뭔가 다른 게 또 있는데, 하고 말끝을 흐리던 어머니는 그날 자정이 넘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 맞아, 망초대, 망초대나물이라고 말해주었다. 전화를 끊고 잠자리에 누워 어쩌면 그 들판은 들판이 아니고 그 나물은 그 나물이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있던 그곳이 더 이상 없더라도, 그곳이 아니었더라도, 그날 어머니가 찾던 나물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김태용(소설가·서울예대 교수)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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