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태용] 기억의 저편 이야기



얼마 전 장인어른이 응급 수술을 받았다. 고령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이 어렵고 수술 후에도 회복이 쉽지 않을 거라는 의사의 말이 있었다. 평소 귀가 잘 들리지 않은 장인어른에게 가족들은 가벼운 수술이라고, 잠깐 주무시고 나오는 거라고 메마른 손을 잡아주며 안심을 시켰다. 수술실 앞에 모인 가족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장인어른이 몇 달 전 평소 잘 가는 동네 의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 의뢰를 받고도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고 병원도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평소 자신의 건강을 다소 과신하고 가족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는 것에 한숨을 내쉬며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지만 중환자실에서 장인어른을 본 가족들의 반응은 조금씩 달랐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했고, 특유의 농담을 던지면서도 이상한 말들을 한다고 했다. 전신마취후 환자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섬망상태가 있다는데 그 증상이 보인 것이다.

수술 후 깨어난 장인어른은 자신이 감금된 거라 믿었다. 주변의 의사와 간호사들을 깡패라고 믿어 소리를 지르고 옆에 있는 스탠드를 들어 때리려고도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팔을 휘젓자 간호사가 손목을 침대에 묶기도 했다. 환자보호를 위한 행위였지만 장인어른의 공포와 불안은 사라지지 않은 듯했다. 상태가 호전되고 상황을 인지하고 나서도 깡패, 깡패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딸들의 ‘아빠, 진상 환자였네’라는 농담 속에서도 전쟁이후 십대 때 홀로 서울로 올라와 여러 직업을 거치며 고생한 장인어른의 무용담이 떠올랐다. 반복적으로 들었던 요릿집 주방 보조 시절의 살인사건과 깡패들 얘기 속에 기억의 저편에 자리 잡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당신 특유의 과장된 표현과 손짓을 통해 들은 것만 같다.

말하지 않아도 감지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시간과 청자를 통해 치유 받아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 그 이야기는 우리의 또 다른 기억의 저편에서 빛날 거라고 믿는다.

김태용 (소설가·서울예대 교수)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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