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돌아온다 2



눈이 드디어 그쳤다. 막혔던 길은 대부분 풀렸다. 목공방에도 갈 수 있게 됐다. 다양한 테트리스 도형을 자유롭게 쌓아 여러 모양으로 조립 가능한 책장을 완성해 둔 터였다. 기름칠이 다 말랐을 테니 가져오기만 하면 되는데, 안달만 하고 있었다. 자, 가자!

깨끗해진 큰길을 택했으면 괜찮았으련만, 가는 눈이 아쉬웠던 나는 중간에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큰길에서 1∼2킬로미터 상관이니 큰 차이는 없겠지.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제설차가 미처 다녀가지 못한 그 작은 길은 거의 스키장 슬로프 수준이었다. 늘 다니던 길인데, 거기가 그렇게 오르막이 심한 줄은 미처 몰랐다! 조심조심 엉금엉금 기던 나는,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평소 자주 들르던 승마장 옆 카페를 향해 더 깊은 눈길로 들어섰다. 한 줄 나 있는 바퀴 자국을 따라 돌진하여 차를 세우니, 끝없이 펼쳐진 눈밭이 장관이었다. 불운하게도 그날 나와 동행이 된 친구는 그때까지도 그게 행운인 줄 알았으니….

그만 돌아가려고 보니 후진만이 길이었다. 비틀비틀 뒷걸음질하던 나는 돌려도 되겠다 싶은 곳을 발견했다. 핸들을 틀었고, 다시 전진하려 하자, 왜애앵! 요란하게 헛바퀴 도는 소리. 그 뒤로 계속 부아앙, 애앵, 왜애앵… 갖은 수에도 차는 꼼짝하지 않았다. 여기는 모래주머니도 없다. 나는 마침 차에 있던 목장갑을 끼고 비장하게 바퀴 앞에 엎드렸다. 파내다 보면 길이 생기겠지, 아마? 바로 그때, 짠! 마술처럼 털실 고깔모자를 쓴 아저씨가 나타났다. 손에는 삽 한 자루와 말 사료포대 두 장. 그는 삽을 휘둘러 눈을 퍼내고, 사료포대를 고이 깔고, 짤막하게 지시를 내렸다. 똑바로. 오른쪽. 더 크게! 오오, 차는 무사히 내려섰다. 아저씨는 삽과 사료포대를 챙겨, 구십 도로 허리를 굽힌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휘적휘적 멀어져갔다.

나는 약간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 도움이 벌써 돌아서 나한테 온 거야? 그러는데 입가에는 비실비실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그럼 아저씨한테 상품권 권해드려야 하나?

김서정(동화작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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