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태용] 컬링, 표정의 기술



평창 동계올림픽이 시작되고 며칠 뒤 2월 12일자 칼럼에서 ‘닦기의 기술’이란 컬링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이후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컬링 경기를 보고 하이라이트까지 찾아보면서 전문 용어들과 경기 규칙들을 보다 세세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가슴을 졸이는 승부의 장면들에 감탄하곤 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컬링에 대한 관심을 갖고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 중심에는 한국 여자단체팀의 빙판 위를 미끄러지는 스톤과 깨기의 기술, 피하기의 기술, 닦기의 기술이 있다. 거의 전승에 가까운 실력으로 결승까지 진출했고, 스웨덴과의 결승전에선 잘 싸웠으나 아쉽게 지고 말았다.

컬링을 계속 보면서 이렇게 선수들의 목소리와 표정을 세세하게 지켜볼 수 있는 스포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톤이 놓일 위치를 계산할 때의 예리하고 공학적인 눈빛. 원하는 위치에 스톤이 놓였을 때의 짧은 환호와 엷은 미소.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을 때의 허탈한 한숨. 성공과 실패라는 극단적인 상황의 감정 표출 사이에 놓인 미세한 얼굴 근육들의 떨림과 찰나적인 눈빛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국민 용어가 되고 러블리 캐릭터가 된 김은정 선수가 외치는 ‘워워워워워’ ‘영미! 영미!’라는 마법의 주문과 함께 만들어내는 무덤덤한 표정 역시 유쾌하면서도 감동을 불러왔다.

스포츠보다 멋진 드라마는 없다, 라는 익숙한 문구 속에서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우연과 반전의 힘이겠지만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표정의 디테일이다. 억지로 만드는 표정은 거리감을 주지만 감정과 감각이 일치된 표정은 전염성이 강해 어느새 우리도 비슷한 표정을 짓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연스러운 표정을 볼 수 없다. 거울을 볼 때도 이미 자연스러운 표정이 사라진 뒤다. 무언가에 몰입되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타인의 표정을 보면서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표정의 기술을 배울 수 있다. 이제 컬링의 승부는 결정됐고, 올림픽도 끝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우리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김태용(소설가·서울예대 교수)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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