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세배를 위한 세배



세배와 세뱃돈의 관계는 필요조건인가 충분조건인가, 특히 아이들의 경우에.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는 세뱃돈을 받았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세배와 세뱃돈이 반드시 같이 가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돌아보면 나는 괜찮다면서 세뱃돈을 사양하기도 하는 아이였으니까. 내가 적어도 한 번쯤은 했던 “괜찮아요”는 마음에 없는 소리였지만 신기하게도 그렇게 말하는 순간 마음도 말을 따라 움직이곤 했다. 정말 세뱃돈은 중요하지 않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둘의 관계가 괜히 궁금해진 건 내가 세뱃돈을 주는 입장이 된 후의 일이다. 해마다 신권을 교환하지는 못해도 해마다 세뱃돈 시세는 알아본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눈 닿는 곳마다 세뱃돈 시세에 대한 언급이 있다. 주식이나 환율처럼 말이다. 주로 초중고 입학 전후로 금액이 구분되기 때문에 학제 개편이 된다면 뭣보다도 세뱃돈 차등 지급의 기준이 달라질 거라는 생각도 든다. 요즘엔 형제자매간에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 세뱃돈을 차등 지급하는 것도 갈등 요소가 된다니, 하향 평준화할 것인지 상향 평준화할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입학 및 졸업 등의 이슈가 있는지 아닌지도 살펴야 한다.

봉투를 다 준비했으나 예고 없는 기습도 있었다. 이제 갓 세 살이 된 조카의 세배는 정말 예상 못한 거였다. 설을 앞두고 연습을 좀 한 모양이었다. 에너자이저 같은 그 아이는 한복 저고리를 입자마자 벗어버렸고, 풍성한 치마만 입은 채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향해 세배를 했다. 어른들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하자, 아이는 엉덩이를 높이 세우고 머리를 땅에 쿵 박았다. “으스브스니니니.”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걸로 추정되는 말을 웅얼거리며. 그것이 이 아이의 실전, 생애 첫 세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세배라는 행위가 꽤 신선하게 느껴졌다. 할머니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만원 지폐 한 장을 줬다. 아이는 세뱃돈을 받고 보란 듯이 거기에 뽀뽀까지 했는데, 잠시 후 쿨하게 버리고 떠났다. 그야말로 세배 그 자체를 위한 세배였던 것처럼.

윤고은(소설가)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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