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뚝뚝 탄 풍경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들으면 8년 전 어느 밤이 떠오른다. 자정 가까운 시간, 나는 태국 치앙마이의 타패문 앞에 서 있었다. 두 시간 후 인천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택시를 탈 예정이었고, 예약된 택시가 아니라는 것만도 나름 모험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내가 올라타게 된 건 택시도 아닌 뚝뚝(TUKTUK)이었다. 뚝뚝이 택시보다 훨씬 저렴한 요금을 불렀던 것이다.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섞은 듯한 삼륜차 뚝뚝은 태국의 흔한 교통수단이긴 했으나, 그것을 타고 도심을 벗어나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어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결국 덜컥 올라타게 됐다. 내 동행은 24인치 캐리어 하나가 전부였다.

북적북적 불 밝힌 도심은 내 출발지점일 뿐이었고, 계속 그런 조도와 소음 속을 통과했다면 좋았겠지만 뚝뚝은 곧 그것이 달리기에는 너무 큰 도로 위로 접어들었다. 소음이라고는 도로 위를 달리는 세 바퀴의 마찰음이 전부고, 빛이라고는 규칙적으로 세워진 가로등 불빛이 전부인, 그런 곳으로. 자정 즈음 혼자 뚝뚝을 타고 도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게 더럭 겁이 났다. 공항까지 20분 정도는 달려야 했다. 게다가 운전하던 남자는 내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한국인이니? 이제 집으로 가니?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지만 실은 무척 긴장한 상태였다. 운전석의 그는 뭔가를 주섬주섬 만지기 시작했고, 곧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그의 뚝뚝에 있던 한국 노래가 누군가의 긴장된 여정을 감미로운 뮤직비디오로 바꿔놓았다. 밤의 한가운데, 혼자 공항으로 가는 여자의 긴장감을 완벽히 녹여준 선물이었다. 8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이 노래를 듣게 되면 그 밤길을 떠올리게 된다. 턴테이블에 LP판을 올리고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드는 걸 지켜보는 마음으로 그 길을 재생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데 그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도 않다. 단지 노래 한 곡이면 된다. 우리에게 배경음악이 필요한 이유다.

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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