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양철 인간의 사랑



‘오즈의 마법사’를 번역하고 있다. 눈이 책과 컴퓨터 화면을 쉴 새 없이 왔다갔다 해야 하는 번역작업은, 안 그래도 위태로운 시력에 몹시 폐가 된다. 그래서 긴 글 사양해온 지 오래지만 이 책은 물리칠 도리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마이클 모퍼고가 강아지 토토의 시점으로 다시 쓴 오즈의 마법사라지 않는가.

도로시 일행이 숲 속 양철나무꾼을 만나는 지점에서 마음이 딱 멈췄다. 그는 자신이 왜 양철인간이 됐는지 설명한다. 가난한 나무꾼이었던 그는 숯쟁이 딸과 사랑에 빠지지만 여자의 엄마가 반대를 한다. 돈 많고 전도유망한 읍내 청년이 더 어울린다나. 그래도 결혼을 강행하자 엄마는 마녀를 사주한다. 그리하여 저주에 걸린 도끼가 주인의 다리와 팔을 차례로 잘라버린다. 그는 굴하지 않고 대장장이에게 양철 다리와 팔을 주문해 붙인다. 심지어 뎅강 잘린 머리도 양철로 대체한다. 하지만 도끼가 몸통을 갈라 심장을 꺼내 버린 데는 대책이 없다. 여전히 그를 사랑하던 여자가 그 지점에서 사랑을 거두고 떠나간다. 심장 없다는 말은 하지 말걸. 양철나무꾼은 후회한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진실을 말하는 게 맞는 거지?

도서관으로 달려가 프랭크 바움의 원 글을 확인한다. 흐름은 같아도 미묘한 차이가 많다. 모퍼고가 다시 쓴 이야기가 조금 더 잔인하지만, 훨씬 먹먹하게 애틋하다. 내 안은 텅 비었어! 내 삶도 텅 비었어! 외치는 양철나무꾼을 작가는 그 누구보다 사랑으로 가득 찬 존재로 만들었다. 사지 온전하고 심장 있는 인간도 포기하는 사랑을, 덜그렁달그랑 양철소리 요란한 속 빈 그가 끝까지 놓지 않는다. 번개 맞아 고통스러운 몸이 비바람에 녹슬어 일 년 넘게 도끼 쳐든 자세로 꼼짝 못하고 서 있어도, 꿈꾸고 소망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뭐가 무서워? 묻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뭐가 무서워서 사랑하고 꿈꾸고 소망하기를 멈추는 거야? 나 같은 깡통도 포기하지 않는데. 이런 소리가 자연스럽게 선명하게 울리는 이야기. 동화라서 가능하겠지. 이래서 나는 동화가 좋다.

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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