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불쌍한 팬티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낡은 속옷과 이별하는 걸까. 한때 나는 그런 게 다 궁금했다. 겉옷이야 의류수거함에 넣기도 하고 팔기도 하고 나눠 입기도 하지만 속옷엔 좀 한계가 있으니까. 그래서 여기저기 물어본 적이 있는데 어떤 이들은 의류수거함이나 헌옷수거 업체를 활용한다고 했고, 어떤 이들은 일반쓰레기로 버린다고 했다. 조각조각 잘라서 형체를 불분명하게 한 다음 버리는 이도 있었다. 내 경우엔 창틀 청소를 할 때 활용하곤 했는데, 요즘엔 다른 방법을 찾았다. 낡은 속옷과 구멍 뚫린 양말을 따로 챙겨두면 여행 중에 일회용으로 쓰기 좋아서다. 여행지에서도 빨래는 필요한데, 가끔은 빨아서 널어둘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없을 때도 생기니까.

S는 내게서 어떤 힌트를 얻은 것 같았고, 가족의 푸껫 여행 때 낡은 속옷과 동행했다. S의 남편은 물건을 좀체 버리지 못하는 타입이라 러닝셔츠도 하나 사면 메시 소재가 될 때까지 입는다고 했는데(물론 처음엔 그런 소재가 아니었다), 이미 수명을 다한 속옷을 여행지에서 한 번만 더 쓰고 버리자고 하자 S의 남편도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됐다. 부부는 산뜻한 기분으로 여행을 갔고 오래된 속옷과 드디어 이별하게 됐다. 그러나 이별식은 좀 당혹스러웠다. S의 남편은 스파의 탈의실에 들어가서야 하필이면 몹시 낡은 팬티를 입은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마사지를 받기 위해 속옷만 입고 나와야 하는데, 그 속옷은 뭐랄까….

S는 이렇게 회상했다. “삼각이었는데, 심각했지. 엉덩이골 쪽이 다 해진 거야. 뒤쪽이라 다행이었어.” 누가 봐도 불쌍해 보이는 팬티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부부는 음악이 흐르는 방에서 나란히 등 마사지를 받기 시작했는데, 잠시 후 이런 소리가 들렸다. 키득키득키득, 두 명의 마사지사가 숨죽여 웃고 있었고, 당연히 원인제공자는 불쌍한 팬티였다. 정색을 하는 것도 어색할 것 같아 S도 결국 웃고 말았다. 남편도 웃었고, 불쌍한 팬티는 그렇게 모두를 무장해제시켰다. 예상 밖의 관객까지 두고서, 팬티는 확실히 주인공이 됐다.

윤고은(소설가)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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