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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바룰라’ 할배들 “제일 귀한 건, 지금 이 순간” [인터뷰]

‘비밥바룰라’에서 호흡을 맞춘 윤덕용 신구 박인환 임현식(왼쪽부터). 네 사람은 “중견배우들이 활약할 수 있는 작품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24일 개봉한 영화는 대형 경쟁작들에 치여 상영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화사 김치 제공
 
영화 ‘비밥바룰라’의 한 장면. 영화사 김치 제공




박인환·신구·임현식·윤덕용
암 선고 받은 한 친구
그를 돕는 ‘진짜’ 친구 3명 역할

“동작 늦고 깜빡깜빡하지만
그래도 우린 지금이 너무 좋아”


“건방진 말이지만, 이 나이 대에 이런 자리에 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실력 있고 잘생긴 사람들도 중간에 숱하게 그만뒀거든. 우리는 굉장히 운이 좋은 거죠. 선택받았으니까.”(박인환)

누군가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그들에게도 여전히 꿈이 있다. ‘비밥바룰라’(감독 이성재)는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일흔을 훌쩍 넘긴 네 배우가 이 영화의 주연. 박인환(73) 신구(82) 임현식(73) 윤덕용(76)을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알록달록한 스웨터를 맞춰 입고 나란히 앉은 네 사람. 초반엔 다소 긴장한 듯하더니 이내 입이 풀렸다. 박인환이 노련하게 분위기를 주도하면 임현식은 특유의 입담으로 중간중간 웃음을 던졌다. 동생들의 말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신구는 자신의 생각을 짧게 곁들이고, 윤덕용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광경은 영화 속 모습과 거의 일치한다. 극 중 박인환이 연기한 영환이 네 친구의 리더다. 암 선고를 받은 그는 친구들과 여생을 보내고자 손수 집을 마련하고선 셋을 불러 모은다. 현식(임현식)이 첫사랑을 이루도록 용기를 북돋우고, 치매 아내를 돌보는 순호(신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가족을 떠난 덕기(윤덕용)를 직접 찾아 나선다.

영화는 노년의 삶을 어둡지 않게 그려낸다. 친구들을 만나면 장난부터 치는 천진함이 소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네 배우의 마음을 끌어당긴 것도 그 지점이었다. 신구는 “누구나 따뜻하게 볼 수 있는 영화”라며 “노인 친구들이 모여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나가는 내용이 좋았다”고 말했다.

연기 호흡은 두말할 것 없었다. 연기경력 도합 ‘207년’에 빛나는 베테랑들이 아닌가. “작품의 분위기를 잡아가고 그에 맞춰 연기를 해내는 데 아무런 부담이나 껄끄러움이 없었어요. 우린 그런 기술이 있는 사람들이에요.”(임현식) “현장에서 임현식씨 때문에 많이 웃었지. 얘가 아주 위트 덩어리에요.”(신구)

윤덕용은 “난 젊었을 때부터 주로 단역을 했던 배우인데, 세 분 사이에 껴서 영광스럽게 촬영을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제가 노안이라 30대 때부터 노역(老役)을 많이 했어요. 늙어서도 노역은 다 내 차지이겠거니 했죠. 근데 웬 걸, 주인공이었던 배우들이 나이를 드니 내가 할 역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한참 쉬었죠. 그러다 이런 기회를 만나니 참 감사합니다.”

박인환은 “연기자는 선택받는 직업이라 나이 들수록 기회가 줄 수밖에 없다”면서 “그래서 기회가 주어질 때 놓치면 안 된다. 자주 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분량이 많고 적음을 떠나 일단 하게 된다”고 얘기했다. 임현식은 “난 허리가 아파 휠체어를 끌고 다니면서도 촬영한 적이 있다. 카메라 앞에 서면 (아픈 것도) 잊어버리더라”고 했다.

“나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요. 물론 한창 때보다야 동작이 굼뜨고 정신이 깜박깜박한 건 있지. 그래도 노력하면 다 할 수 있어요. 노인네라고 집이나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절대 안 해요.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거예요.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박인환)

영화 드라마는 물론 예능과 연극 무대까지 누비고 있는 신구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난 계획이 없어요. 그렇다고 (미래를) 포기하고 사느냐? 그건 아니지. 지금 이 시간이 제일 귀하다는 거예요. 누구라고 죽는 걸 피할 수 있나. 그저 눈앞에 닥치면 의연하게 가면 되는 거죠. ‘난 지금 이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 지금이 좋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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