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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 “매번 평범하다고? 그 어려운 걸 해냅니다” [인터뷰]

방산비리를 다룬 영화 ‘1급기밀’에서 내부고발자 박 중령 역을 맡은 김상경. 그는 “늘 새로운 연기를 해야 하고, 매 작품마다 그 인물에 완전히 이입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래서 역할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뿐더러 다작(多作)할 수도 없다”고 했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영화 ‘1급기밀’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제공




“나는 영화 속 인물로만 남고 싶지, 실제 내가 드러나는 건 별로라고 생각해요.”

배우 김상경(46)의 작품들을 돌아보면, 그는 오롯이 극 중 인물 자체로 존재한다. 예컨대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로 활약한 ‘생활의 발견’(2002) ‘극장전’(2005) ‘하하하’(2009)에서 지질한 남성의 전형을 보여줬다면, ‘살인의 추억’(2003)이나 ‘화려한 휴가’(2007)에서는 강인한 신념의 표상이 되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상경은 “내게 제안이 오는 역할들은 대개 색깔이 없고 평범한 경우가 많다. 연기하기는 어렵지만 난 그런 캐릭터가 마음에 든다”며 “인물을 완전히 재창조한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 어려운 걸 풀어냈을 때의 쾌감과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24일 개봉한 영화 ‘1급기밀’(감독 홍기선)에서 연기한 박대익 중령도 마찬가지였다. 특전사 출신인 그에게는 ‘맞춤형 캐릭터’였을 터. 그럼에도 김상경은 서있는 각도부터 표정 몸짓 말투까지 세세하게 인물을 설정해나갔다. 국내 최초로 방산비리를 다룬 이번 작품의 경우 실존인물에게 조언을 구하는 과정도 추가됐다.

극 중 박 중령은 국방부 항공부품구매과 과장으로 일하며 알게 된 군납업체와 군의 유착관계를 폭로하는 인물. 다시 말해, 평범한 가장이면서 동시에 꼿꼿한 신념을 지닌 군인이다. 김상경은 “내부고발자 혹은 공익제보자들이 겪는 심적 갈등과 고통을 표현하고자 했다”며 “불합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영화는 기획 초기 단계부터 가시밭길을 걸었다. 민감한 소재 때문이었다. 모태펀드에서 번번이 투자를 거부당해 제작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더욱이 주연배우 김상경이 5·18 민주화운동을 조명한 ‘화려한 휴가’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던 상태. 그는 자진해서 출연료를 낮춰가며 제작에 힘을 실었다.

“전 정부나 전전 정부나 그렇게 방산비리를 척결해야 된다고 외쳤잖아요. 그래서 난 (출연 제안을 받았을 당시) ‘이거 정부가 좋아하는 영화네. 게다가 시나리오도 재미있네’ 하며 출연하겠다고 했죠(웃음). 근데 자꾸 제작 일정이 늦춰지는 거예요. 이해가 안 됐죠. 이 영화는 보수·진보를 떠나 온 국민이 보고, 알아야 할 이야기이거든요.”

그러면서 유쾌한 제안을 하나 곁들였다. 김상경은 “요즘처럼 엄혹한 정치 이슈가 많을 때 보수와 진보가 손잡고 극장에 올 수 있는 유일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여야 정치인들이 다 같이 오셔서 영화를 봐주시면 좋겠다”며 “군 수뇌부와 군인들이 단체 관람을 하셔도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연극 무대부터 시작해 20여년간 배우로 살아 온 김상경에게는 확고한 연기관이 있다. 캐릭터가 아닌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 “종종 ‘그 작품에 무슨 역으로 나왔느냐’는 질문을 받아요. 난 다 주인공만 했는데(웃음). 그게 내 영화의 특징이에요. 혼자 도드라지지 않죠. 오히려 판을 깔고 극의 흐름을 잡아주는 게 주인공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배우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준 작품으로는 ‘생활의 발견’을 꼽았다. 홍 감독의 독특한 연출법이 그가 영화를 찍는 방식마저 바꿔놓았다면서. “홍상수 봉준호 같은 훌륭한 감독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잖아요. 그 결과물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줄 수도 있고요. 저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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