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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갑상샘암이 순하다고? 독한 놈도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장항석 교수가 한 여성 환자에게 갑상샘 모형을 보여주며 목을 살펴보고 있다. 장 교수는 “갑상샘암 중에는 치료가 어려운 유형도 있는 만큼, 진단 및 치료에 소홀해선 안된다”고 조언했다.








모두 착한 암으로 잘못 인식
대다수는 치료 잘 되지만
미분화암이나 수질암 같은
나쁜 암도 있어 경계해야
암 없애도 금방 재발하거나
수술 불가능한 경우도 많아


이모(60·여)씨는 2009년 감기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뜻밖에 갑상샘암을 진단 받았다. 암이 갑상샘 주변 림프절까지 퍼진 3기였다. 치료를 위해 양쪽 갑상샘을 다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2차례 방사성 요오드 치료(수술 뒤 잔존 암을 태워 없앰)가 잘 돼 고비를 넘기나 했다. 의사도 암이 비교적 순한 유형이어서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말해 안심했다.

갑상샘은 목의 툭 튀어나온 부위(목젖) 아래에 나비가 날개를 편 것처럼 양쪽으로 붙어있는 기관이다. 우리 몸의 대사 기능 유지에 꼭 필요한 갑상샘 호르몬을 만든다.

그런데 3년만에 이씨에게 암이 재발했다. 구토 증세로 병원에 갔더니 림프절뿐 아니라 폐까지 전이됐다고 했다. 덜컥 겁이 난 이씨는 국립암센터로 옮겨 치료받기로 했다. 담당 의사는 “이젠 방사성 요오드 치료도 듣지 않는 난치성 암이 됐다”고 해 충격받았다.

이씨는 지금도 몸에 암세포를 지니고 산다. 최근 암 진행을 늦춰주는 표적 항암제가 나와 임상시험에 참가하고 있다. 폐로 전이된 암세포가 많이 줄긴 했지만 완전히 없애진 못했다. 6년째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이씨는 “방송에서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속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조기에 검진하고 열심히 치료받지 않으면 순한 암도, 거북이암도 아닐 수 있는데 다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흔히 갑상샘암은 진행 속도가 느려 거북이암으로 알려져 있다. 진단시 발견한 암의 크기가 10년간 놔둬도 90%는 거의 그대로다. 또 일찍 발견해 치료하면 5년 생존율이 100%에 이를 정도여서 얌전한 암으로 불린다.

하지만 모든 갑상샘암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일부 유형의 갑상샘암은 치료도 어렵고 경과가 아주 나빠 환자의 고통이 크다. 처음 발견 땐 순한 암이었어도 치료 과정에 암의 성질이 공격적으로 돌변해 난치성 암이 되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갑상샘암의 과잉진단과 치료가 사회 이슈화되면서 국내 갑상샘암 지표는 크게 줄었다. 문제는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되는 이런 난치성 갑상샘암의 진단이나 치료마저 소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과잉진단 논란이 낳은 풍경

최근 발표된 중앙 암 등록통계에 따르면 2015년 갑상샘암 신규 환자는 2만5029명으로 전년(3만1079명)보다 19%가량 감소했다. 계속 증가세였다가 2013년부터 내리 3년째 환자 수가 줄었다. 2012년 의료계 일각에서 제기된 갑상샘암 과잉진단 논란과 맥이 닿아있다.

국립암센터 류준선 갑상샘암센터장은 22일 “건강검진에서 갑상샘 초음파검사를 받는 환자수가 크게 줄었고 초음파에서 혹이 있어도 흡인세포검사(바늘로 찔러 검사)를 시행하는 빈도도 감소했다”면서 “일선 병원 건강검진 프로그램에서 갑상샘 초음파검사도 많이 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실제 갑상샘암 발생이 감소했다기보다는 진단이 줄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했다. 즉 소극적 검진의 결과로 발견이 덜 됐을 뿐이란 것이다. 갑상샘암은 방사선 노출(특히 소아 때)이나 가족력, 비만, 요오드 많이 든 음식(미역 파래 등 해산물)섭취 등이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술 대상과 절제 범위도 많이 축소됐다. 류 센터장은 “과거엔 2∼3㎜ 정도 작은 암도 찾아내 수술했는데, 지금은 1㎝ 이하이고 피막 침범과 전이가 없으면 경과를 지켜보고 1㎝ 이상 암만 수술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단 어릴 때 방사선 치료 경험이 있거나 다수의 다른 위험 요인이 있다면 5㎜∼1㎝ 암도 치료가 고려된다.

수술은 1㎝ 이상일 경우 과거엔 암 부위를 포함해 양쪽 갑상샘 전부를 절제했지만 지금은 2∼3㎝ 크기여도 한쪽만 떼내는 수술을 더 많이 하고 있다.

류 센터장은 “갑상샘암의 과잉진단과 치료가 줄어 경제·사회적 비용 감소, 환자 삶의 질 향상 등 긍정적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일부이긴 하지만 꼭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조기 발견을 놓칠 수도 있고 치료 범위가 축소돼 향후 재발이나 재수술 환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연세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갑상샘암센터 장항석 교수도 “과잉진단 논란 이후 국민들 사이에 이건 암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크게 우려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모든 암이 그렇듯 조기 발견과 치료를 하면 훨씬 더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잘못된 인식으로 자칫 병을 키울 경우 치료 과정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생존율 또한 낮아질 것이란 얘기다.

장 교수는 “갑상샘암의 실제 발생은 변화가 없는데 발견되지 않고 방치된 암이 많아진다면 더 진행된 상태에서 진단되는 환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1주일 만에 자라는 암

갑상샘은 여포세포와 C세포 2가지로 이뤄져 있다. 국내 발생 갑상샘암의 대다수에 해당하는 유두암과 여포암은 여포세포에서 생긴다. 둘 다 정상 갑상샘세포의 성질과 기능을 많이 유지하고 있어 ‘분화암’이라 불린다. 비교적 천천히 자라 수술도 잘 되고 수술 후 요오드 치료에도 반응을 잘해 흔히 말하는 순한 형태다.

반면 드물게 발생하는 미분화암(역형성암)은 전이가 흔하고 암이 커지는 속도가 빠르다. 처음엔 분화 갑상샘암이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분화도가 나빠져 생기며 치료가 아주 어렵다. 수술로 암 부위를 깨끗이 없애도 1주일 만에 다시 자라기도 해 암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암에 속한다.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아 진단 시점부터 평균 생존기간은 3∼6개월에 불과하다.

40대 여성 김모씨는 10년 전 갑상샘에 2㎝ 크기 혹을 발견했다. 갑상샘암은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주변 얘기를 듣고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혹이 갑자기 커지고 심한 통증이 느껴져 병원을 찾았다. 정밀 조직검사결과 김씨가 걸린 갑상샘암은 ‘미분화 갑상샘암’으로 판명됐다. 김씨는 즉시 수술 받았지만 이미 암이 전신으로 퍼진 상태에서 힘겹게 투병을 이어가고 있다.

장 교수는 “암 치료가 늦어지거나 암세포가 몸에 오래 잔존하게 되면 유전적 변이를 일으켜 기존 정상세포의 성질과 기능을 잃어버리고 점차 공격적이고 지독한 암으로 변한다”면서 “이 경우 분화암에서 저분화암, 나중엔 가장 위험한 미분화암으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C세포에 생기는 수질암 역시 난치성이다. 1년에 100명 정도 발병하는 희귀한 암이지만 진단시점에 이미 절반 정도의 환자에서 림프절로 퍼지고 5∼10%는 다른 장기로 원격 전이된 상태로 발견된다. 수술 외에 현재까지 적당한 치료법이 없다.

원격 전이시 5년 생존율과 10년 생존율은 각각 26%, 10%에 불과하다. 일반 유형의 갑상샘암의 경우 국한(1·2기) 국소(3기) 원격전이(4기) 단계에서의 5년 생존율이 각각 100.7%, 100.4%, 71.0%인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수질암은 유두암이나 여포암과 성질이 달라 처음부터 같은 얌전한 암으로 생각하고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은 위험하다. 30%의 유전성을 갖고 있어 직계가족 중 갑상샘암이 있다면 꼭 암 여부를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

외면받아선 안될 10∼25%

이처럼 원래부터 치료가 잘 안되는 종류와 처음엔 순한 암이었으나 재발과 전이를 거듭하며 치료가 어려워진 유형을 포함해 전체 갑상샘암의 10∼25% 정도가 난치성 암에 해당된다.

장 교수는 “난치성 갑상샘암이 최대 25%에 달해 결코 무시할 수 없는데도 일반인은 해당 질환을 잘 알지 못하거나 무조건 별 볼일 없는 암이라고 잘못 생각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최근 난치성 갑상샘암연구소를 열고 암 악화 원인 규명, 새로운 치료법 개발, 환자 지원 등에 나섰다. 연구소 기금 1억5000만원의 92% 가량을 환자와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했다. 외면받고 있는 난치성 갑상샘암의 현실을 알리고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반인도 갑상샘암에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목에 혹이 만져지거나 목소리가 변하는 등 갑상샘암 진행이 의심되는 경우 전문의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다. 류 센터장은 “일반 건강검진에 갑상샘 초음파검사가 포함되는 건 과잉진단 우려로 바람직하지 않으나 가족 중 갑상샘암이 있거나 암이 걱정될 경우 검진을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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