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풀뿌리문화



동생이 쉰 중반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집 고양이는 바이올린에서 끼익 끄억 줄긋는 소리가 나면 얼굴을 찌푸리며 방을 나가버리곤 했다(우리 집 고양이는 내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할 때 내 발을 물어뜯곤 했다). 고양이 눈총을 받으며 굳건하게 연습하던 동생은 지역 오케스트라에 가입하더니, 작년 말 연주회를 했다.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이 꽃다발을 들고 콘서트홀에 모였다. 홀을 제법 가득 채운 청중들 모두 그런 가족, 친척, 친구들이었을 것이다. 단원 대부분이 아마추어인 오케스트라는 뜻밖에도 훌륭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긴장했다가 안도했다가, 민망해했다가 즐거워하는 표정 변화를 보는 것도 다른 연주회에서는 찾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연주를 끝내고 로비에서 만난 연주자들과 청중들이 떠들썩하게 인사를 나누며 칭찬하고 뿌듯해하는 모습도 행복해 보였다. 아마추어들의 문화행사에는 그렇게 소박하지만 푸근한 기운이 있다. 그런 기운이 안으로 스며들어서 삶을 부드럽고 충만하게 만들어준다는 데 풀뿌리문화의 힘이 있는 것 같다.

십 년쯤 전 오사카에 6개월 머물 때 옆집 살던 70대 할머니도 그런 문화를 적극적으로 누리던 사람이었다. 예순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그녀는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었다. 서툴면 서툰 대로 능숙하면 능숙한 대로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하모니카를 정성껏 연주하는 음악회였다. 할머니는 외국어 공부도 열심이어서 영어 소설과 프랑스 소설 읽기 모임도 한 달에 한 번씩 나가고 있었다. 일본이란 나라가 참 문화 강국이구나, 나는 그들을 보며 그렇게 느꼈다. 그 부럽던 풀뿌리문화가 지금 내 주변에도 여러 모양으로 번지고 있으니 이제 더 이상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겠다.

나도 새로운 풀뿌리문화의 장에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오케스트라 가입을 목표로 바이올린을 시작해? 궁리하는데, 이마가 따갑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쪽 구석에 먼지 뒤집어쓰고 있는 기타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다. 그래, 하던 거나 제대로 하자.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