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태용] 사라진 깃털



얼마 전 새 작업실을 얻었다. 들뜬 기분으로 작업실을 단장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옷을 걸어둘 고리를 벽에 달고 있을 때였다. 머리 뒤에 센서가 달린 것처럼 뭔가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았고, 아주 잠시 동안 얼어붙고 말았다. 의자에 던져두었던 패딩이 흘러내려 전기난로에 붙어 있던 것이다. 그제야 타는 냄새가 난다는 것을 인지하고 서둘러 사태를 수습했다. 패딩의 뒷부분이 타들어가 구멍이 뚫렸고 깃털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더 큰일로 번지기 전에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또 방심하고 말았군, 이라고 자책을 하면서 정리를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날아다니는 깃털들을 잡으려 소형 청소기를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했다. 어리석은 깃털 사냥꾼이 된 것이다.

다음 날 아내와 아이가 작업실을 찾아왔다. 좀 더 쾌적한 환경을 보여주려던 나의 바람은 섬유 탄내와 여전히 날아다니고 있는 깃털들로 인해 무너졌고, 패딩의 상태를 보여주자 어이없는 웃음들이 쏟아졌다. 그 웃음들과 함께 패딩의 구멍 속에서 더 많은 깃털들이 날아올랐다. 아이가 날아다니는 깃털을 잡아보려고 뛰어다니고 점프를 했다. 나는 다시 깃털 사냥꾼이 되어 청소기를 들고 깃털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머리 위에 날아다니고 있는 깃털을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왠지 의기양양해졌다. 주변 정리를 할 동안 아이는 의자에 주저앉아 있었다. 입이 솜뭉치가 들어간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순간 사라진 깃털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른들은 쉽게 아이들의 시간을 제거해 버리곤 한다. 그 시간이 그저 시끄럽고 무용하다는 이유로. 혹은 아이가 너무 재밌게 놀고 있다는 이유로. 우리 모두 빼앗긴 유년의 시간을 갖고 있다. 왜 조금 더 기다려주지 못했을까. 깃털이 하찮기 때문이 아니라 지구의 중력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즐거워서 시간의 진동에 따라 떠다닐 수 있는 거라고 말해줄 수는 없었을까. 그때 사라진 깃털은 어디로 갔을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아이는 문득 그렇게 되물을 수 있을까.

글=김태용(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