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오류의 생존방식



요즘 ‘아무말대잔치’라고 봉합해 버리는 화법도 생겨나긴 했지만, 여전히 말은 쉬운 도구가 아니다. 가끔 명확한 설계도 같은 말을 만나면, 그걸 듣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정리되는 것 같다. 어떤 생각과 방법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데 능숙한 사람들이 있다. 자동차에 앉은 채로 우리를 지탱해 주는 바퀴의 회전에 대해 설명하던 운전 선생님이 그랬고, 전화통화만으로 내 프라이팬 위의 상황을 통제해 주던 요리 선생님이 그랬다.

그중에 최고는 요가 선생님이다. 수강생이 많으면 선생님의 동작을 볼 만큼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 절대적인 가이드가 된다. 수강생을 바라보고 앉아 요가를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있는데 이 경우엔 수강생과 선생님의 좌우 방향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수강생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그 기준으로 좌우를 말하는 분들을 보면 놀랍다. “왼쪽”이라고 말하며 몸을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내가 만난 첫 요가 선생님도 좌우 설명이 거울처럼 정확했다. 그럼에도 그곳을 오래 다니지 못한 건 다른 종류의 화법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이제 갈비뼈를 닫으세요”라고 말할 때마다 당황하곤 했다. 갈비뼈를 내가 닫을 수 있는 거란 말인가, 난 연 적도 없는데. 지금은 그걸 호흡으로 조절한다는 걸 알지만 당시엔 몰랐다. 선생님이 자주 썼던 말 “목적을 개입하세요”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난해하다. 생각을 모으라는 의미인 것 같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요가에 집중할 수 없었다. 번역기를 덜 돌린 것 같은 문장구조가 나를 자꾸 시험하는 바람에 결국 재등록도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말을 설계도 삼아 허공에 무언가 만들기를 좋아한다. 3D프린터처럼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어서 “목적을 개입하세요”는 몇 년째 소화가 덜 된 말처럼 겉돌고 있다. 재미있는 건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내가 그 말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멀쩡한 말들은 이미 다 구현됐기 때문일까, 이 난해한 말만 과제처럼 머릿속에 남아 버렸다. 어쩌면 이게 오류의 생존방식일 수도.

윤고은(소설가),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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