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는 시대다] ‘그냥’ 폭주하고 ‘무조건’ 습격하라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주요 등장인물들. 왼쪽부터 딴따라 무대포 노마크 뻬인트. 필자 제공
 
영화의 결말. 현금을 챙긴 일행들은 주유소를 떠나 어디론가 향한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계획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필자 제공
 
동네 건달로 유해진과 이종혁이 나온다. 이들은 영화 중반에 딴따라의 명령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영화는 이 장면을 뮤직비디오처럼 찍었고 관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위 사진). ‘주유소 습격사건’의 속편이 2010년에 개봉되었지만 1편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아래 사진). 필자 제공
 
김상진 감독


1999년 11월 24일자 동아일보 사회면에 실린 단신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을 모방한 범죄가 또 발생했다.”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함께 일했던 이들이 영화를 본 다음, 주유소를 털다 붙잡혔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에서 눈여겨 볼 지점들 몇 개가 있다. 하나는 범죄자들의 신분이다. 범행을 계획한 자들은 10대의 무직자들이다.

기사는 영화의 개봉 이후 10대들에 의한 유사 범죄가 몇 번 더 있었다는 점을 덧붙인다. 다른 하나는 범행 동기다. 이들은 영화 속 인물들이 멋있어 보였다는 이유를 든다. 마지막으로 범행 장소의 성격이다. 영화 속 은행털이범들의 수법을 10대들이 따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들에게 주유소는 은행과 달리 훈련이나 체계 없이도 쉽게 침입 가능해 보이는 현금창고이자 놀이터였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사실을 경유해서 당대 청년들의 초상을 보편화하려는 건 물론 아니다. 범죄영화가 범죄를 낳는다는 고루한 지적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위의 기사에는 ‘주유소 습격사건’이 어떤 지반 위에서 흥행에 성공했는지에 대해 짐작할 만한 것들이 있다. 영화가 개봉된 해는 외환위기의 여파로 청년 실업이 급증하던 때였다. 외환위기의 최대 희생자가 20대 청년들이라는 진단이 자주 들리던 시기였다. 그들은 실업의 위협에 노출된 자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전 세대와 스스로를 차별화하는, X세대로 불리던 집단이기도 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비 지향적이라고 그 세대의 특성이 말해지던 이들 말이다. 그리고 불안과 흥분, 비관과 희망이 혼란하게 뒤섞인 세기말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주유소 습격사건’은 탄생했다. 범죄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10, 20대들의 기질이나 행동 패턴을 한껏 부풀린 영화의 전략은 성공했다. ‘주유소를 습격하는’ 청년 백수들의 과장된 초상에 관객들은 거부감이 아니라 친밀감과 통쾌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 호응에는 기사 속 10대들의 말이 보여주듯 동경도 더러 포함되어 있었다.

그 친밀감과 통쾌함의 정체는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네 명의 남자들이 있다. 그들은 이름이 아니라 별명으로 불린다. 노마크(이성재) 딴따라(강성진) 무대포(유오성) 뻬인트(유지태). 한눈에 보기에도 반항기가 물씬 풍기는 외모들이다. 영화의 도입부부터 그들은 주유소로 돌격한다. 범행의 이유를 이해 시킬만한 이들 각자의 사연이나 범행을 모의하는 장면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그들은 이렇게 말할 따름이다. “심심한데 주유소나 털까.” 바로 다음 장면에서 이 말은 그대로 실행된다.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커다란 글씨가 화면 중앙에 박힌다. “주유소를 왜 터는가.” “그냥.” 영화는 고민과 생각의 단계는 가차 없이 버리고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을 전시하는 데서 쾌감을 찾는 세계로 스스로를 천명하는 중이다.

인물들의 면모는 그런 세계관을 압축한다. 요컨대 노마크는 주유소 사무실에 있는 전화기들을 부수고 사장에게 고치라고 강압적으로 지시한다. 전화기가 겨우 원상태가 되면 다시 박살을 내고 무조건 고치라고 말한다. 이 이유 없는 행동과 상황은 반복된다. 딴따라는 노래 테이프가 늘어나자 사람들에게 억지로 노래를 시킨다. 역시 이유는 없다. 아니, 듣고 싶을 때, 노래를 듣지 못하면 돌아버린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다. 무대포는 “100명이든 1000명이든 난 한 놈만” 때린다며 자랑스레 외친다. 그에겐 “머리 박을래, 맞을래”라는 양자택일의 명령, 무조건적인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뻬인트는 한자로 글귀가 써진 액자들만 보면 갑자기 분노를 참지 못한다. “어려운 말 쓰는 새끼들은 다 죽여 버려야 해”라며 그 액자들을 모두 밟아 깨뜨리고 만다.

이들이 분출하는 화의 근원을 영화가 아예 제시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들의 과거 장면들은 짧게나마 플래시백으로 삽입된다. 이를테면 노마크는 실패한 야구선수이고 딴따라는 좌절한 로커이며, 무대포에게는 무식하다고 비난받은 기억이 있고, 뻬인트에게는 화가의 꿈을 억압당한 상처가 있다. 이 사연들에서 이들은 피해자의 위치에 서 있고, 가해자의 자리에는 기성세대를 대변하는 자들이 있다. 그 장면들에 등장하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코치, 아버지, 선생의 형상은 이들이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처럼 보인다. 더없이 상투적인 신파조의 기억들이 이들이 주유소에서 펼쳐대는 가학성과 폭력성의 원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느슨하게나마 주유소털이범들의 맞은편에 부모세대의 그림자를 두고 있다는 점 정도는 먼저 지적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주유소 주변을 순찰하는 나이 든 경찰들은 부모들이 번 돈을 무용하게 소비하는 젊은 세대를 습관처럼 힐난한다. 정작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공짜로 주유하는 걸 당연시하는 자들이다. 청년들이 주유소에 침입했을 때 사장이 건넨 충고도 마찬가지다. 그는 젊은 놈들이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 생각은 안 하고 부모 욕 먹일 짓만 한다고 한심해 한다. 그는 직원들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현금의 위치를 감추며 자기 욕심만 챙긴다. 이들은 생산적으로 노동하는 세대와 비생산적으로 소모하는 세대의 구도를 자꾸 환기시킨다. 하지만 그 구도를 깨버리는 자들 또한 그들 자신이다.

요즘 말로 하면 ‘갑질’하는 고용주, 부패한 경찰로 대변되는 세대의 이중성을 영화는 비웃는다. 영화 속 청년들이 하는 단순 무식한 행동들은 그러한 이중성에 대한 일종의 반감의 대응방식이다. 그러나 그 반감은 일차원적이며 저항으로 나아가는 데는 관심이 없다. 군대문화의 강압성은 그들에게 아무런 거부감 없이 그대로 답습된다. 답습을 넘어 즐기고 동경할 거리가 된다. ‘심심함’ ‘그냥’ ‘무조건’ 같은 단어들이 이들의 세계에서는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 영화는 부모세대의 태도뿐만 아니라 청년세대의 행동들 또한 희화화하는 데서 쾌감을 유발한다. 거짓말하며 설교나 일삼는 ‘꼰대’나 할 일 없는 깡패 청년들이나 폭력적이고 우습긴 매한가지다. 기성세대의 질서를 정면으로 노려보거나 뒤집는 데서 희열을 자아내는 방향은 애초 이 영화의 화두가 아니다.

세대 사이의 날선 대결이 아니라면, 차라리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가 더 중요해 보인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중에 유일하게 이질적인 인물 하나가 있다. 그는 명품 로고의 쇼핑백들로 가득 찬 외제 승용차를 타고 주유소 직원들에게 반말을 하며 진상을 부리다가 인질로 잡히는 여자다. 그는 주유소 무리들에게 붙잡힌 상황에서도 남자친구의 재력을 과시하길 멈추지 않는다. 영화가 이 여자를 그리는 시선은 여러모로 천박하다. 남자들이 상류층 젊은 여성에게 가하는 편견들에 이 영화 역시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폭력적이고 성적인 대상화를 농담으로 만드는 데 아무런 거리낌도 없다. 이 영화가 몰두하고 야기하는 웃음의 본질을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자가 재현되는 방식과 더불어 주목을 요하는 건, 그가 주유소의 깡패들이나 아르바이트생들과 달리, 언제든 마음껏 소비할 돈을 가진 자라는 사실이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에게는 그런 자본을 지원해 줄 남자친구가 있다. 그 남자에게는 재력을 가진 부모가 있다. 달리 말해, 영화를 지탱하는 구도는 기성세대 대 젊은 세대라기보다는 부모덕을 보는 자 대 부모덕을 보지 못하는 자라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부모덕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 부모덕을 보는 자들에게 가지는 열패감이 어쩌면 이 세계의 숨은 동력인지 모른다. 상대적 박탈감이 안기는 그 분노는 주유소 밖으로 폭발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만 한낮 철없고 거친 게임의 양상처럼 맴돌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의 애매모호함은 그런 맥락에 있다. 폭주족, 조직 폭력배, 건달, 사장, 아르바이트생, 경찰 등이 주유소 한가운데서 대치한다. 돈을 챙긴 노마크 무리들은 바닥에 휘발유를 잔뜩 뿌리고 라이터를 들어 상대들을 위협한다. 그들이 양아치들이든, 경찰이든, 같은 세대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여기에는 현금 무더기를 든 자들과 아닌 자들의 구분만이 있다. 네 명의 남자들은 돈을 갖고 주유소를 떠나면서 라이터를 던지지 않는다. 불길에 타오르는 주유소의 모습도, 남겨진 자들이 어이없이 충돌에 휘말리는 광경도, 도망치는 이들을 뒤쫓는 추격전도 없다. 자폭이나 궤멸의 움직임 하나 없이 주유소에서의 요란한 밤은 끝난다. 이들이 돈을 탈취해 어디로 향하는지, 그 돈으로 무엇을 계획하는지 영화는 미래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합리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이성적인 대답이 뭉개진 세계, 차이에 대한 감각과 의미에 대한 탐구가 완전히 무시된 세계, 무차별적인 가학과 피학의 쾌감을 통쾌함과 해방감이라고 여기는 세계. ‘세상아, 다 망해라’라고 외치는 반골들의 어둠이 아니라 자본에 맹목적인 삐딱이들의 낄낄거림. 세기말의 관객들은 그런 세계를 즐겁게 승인한 것이다.

▒ 김상진 감독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코미디 감독 명성 되찾아


김상진(51·사진) 감독은 한양대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강우석 감독의 ‘열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등에 각본으로 참여했고 ‘미스터 맘마’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등에서 조연출을 했다. 1995년에 발표한 데뷔작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 그는 박중훈과 정선경을 기용해 강우석 감독에게 배운 코미디 감각을 발휘했다. 하루아침에 돈벼락을 맞은 건달 이야기에 그 돈의 출처가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극적인 설정을 더했다. 김상진만의 개성을 알리며 비평과 흥행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는 다음 해, 박중훈과 박상민이 출연하는 ‘깡패수업’을 만들며 범죄 액션물로 고개를 돌렸지만, 2년 뒤, 강우석의 뒤를 이어 ‘투캅스3’로 돌아왔다. 남남이 아니라 남녀 커플을 내세운 이 영화는 흥행뿐만 아니라 오락적인 면에서도 투캅스 시리즈 중 최저의 평가를 얻었다.

하지만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무려 전국 23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이내 코미디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되찾았다. 2001년에는 차승원 이성재 주연의 ‘신라의 달밤’을, 2002년에는 설경구 차승원이 나오는 ‘광복절 특사’를 선보였다. 어처구니없이 반전의 상황에 내던져진 남자들의 이야기를 연이어 선보이며 김상진 표 코미디를 안착시켰다.

이후 코미디와 판타지를 접목한 ‘귀신이 산다’(2004), 나문희를 주연으로 한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2007), ‘주유소 습격사건’의 명성을 노린 ‘주유소 습격사건2’(2010), 야구 드라마 ‘투혼’(2011), 손호준 김동욱 임원희와 해운대에서 찍은 ‘쓰리 썸머 나잇’(2014) 등 코미디 장르를 변주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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