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태용] 모든 순간이 詩다



주변에서 조용한 입소문을 타고 들려오는 영화가 있다. 바로 짐 자무시 감독의 ‘패터슨’이다. 영화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살고 있는 ‘패터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버스운전사의 일주일간 일상을 담아내고 있다. 월요일이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 영화는 패터슨이 6시30분께 눈을 뜨고, 가볍게 아침식사를 하고, 아내 로라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출근해 버스를 운전하고, 폭포가 있는 강가에 앉아 혼자 도시락을 먹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 뒤, 애완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하다 동네술집에서 맥주를 한잔 마시며 하루를 끝내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게 전부다. 정말 별다를 게 없는 일상이다.

하지만 영화의 비밀은 바로 일상에 숨어 있다. 다소 지루해 보이는 시간의 축 사이사이에 패터슨은 자신만의 무한의 시간을 갖게 된다. 바로 틈틈이 시를 쓰는 것이다. 식탁에 있는 성냥갑을 보고 시를 구상하고, 폭포 앞에서 머릿속으로 시를 읊조리기도 하고, 승객들의 대화와 표정을 엿보면서 일상을 시로 만들려고 한다. 그 순간 패터슨의 일상은 권태가 아닌 신비롭고 아름다운 언어의 세계로 변하게 된다. 무심한 듯 귀여운 주변 인물들과 함께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패터슨의 시와 일상이 겹치면서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지게 된다.

극장을 나와서도 입가의 미소가 온몸의 근육으로 스며들어 걸음을 경쾌하게 만들었다. 평소 같으면 지하철을 탔겠지만 패터슨 같은 운전사를 기대하며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득해 뒷문으로 탈 수밖에 없었고, 손잡이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부대껴야 했다. 그래 현실이란 이런 것이지. ‘영화의 삶이 현실로 지속될 수 없어’라고 체념하는 순간 누군가 나의 구두끈을 밟아 풀렸고, 이 장면이 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시가 될 수 있을까. 시가 될 수 없을까. 시가 되지 않더라도 구두끈을 밟은 누군가의 삶을 상상하며 또 다른 언어의 세계로 순간이동해 영원히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글=김태용(소설가),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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