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청첩장의 유효기간



요즘엔 종이 대신 모바일 청첩장을 돌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서랍 하나는 청첩장 보관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몇 년 만 지나도 활자가 증발하는 영화표나 기차표에 비하면 청첩장에 박힌 활자들은 거의 영구적인 것처럼 보인다. 빳빳한 종이 재질과 선명한 인쇄 상태는 확실히 보관하기에 좋고, 청첩장 위에 놓인 문장들이 신랑신부가 고민해서 선택한 결과라는 걸 생각하면 쉽게 버릴 수도 없다. 여러모로 청첩장은 수집하기에 좋은 품목이 되어버렸다.

나도 두어 번 지인들의 청첩장을 써준 적이 있는데 쉽게 생각하면 쉽지만 정성스레 쓰자면 꽤 복잡해지는 게 청첩장의 초대 문구다. 그런 걸 알기 때문에 C는 자신의 결혼식을 앞두고 가뿐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청첩장 제작업체에서 공개해둔 예문을 쓰기로 한 건데, C가 작가인 것을 고려하면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아마도 C는 그 예문들이 단지 특별하지 않을 뿐 그럭저럭 무난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C의 안목을 통과할 만한 예문이 별로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C는 겨우 몇 개를 골라 친구들에게 보냈으나 돌아온 답은 C를 혼란에 빠뜨렸다. “웬일이니, 왜 이렇게 비문이 많아?” 어떤 친구는 아예 첨삭에 나서기도 했다. 1번 문장에 ‘의’가 중복되고, 2번 문장은 시제가 혼란스럽고, 3번 문장은 남녀의 역할에 대한 편견이…. 참고로 이 친구들은 같은 대학에서 같은 전공을 한 사람들인데 말의 오류를 보면 초조해진다. 그게 현수막이든, 메뉴판이든, 청첩장이든.

C는 미문(美文)은 못돼도 비문(非文)은 안 된다는 신념으로 그 예문들을 대폭 수정했으니, 결과적으로 친구들이 시간 단축에 별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청첩장을 수집하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C의 감식안을 더 높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처음에 C는 청첩장에 신랑신부 이름과 장소 시간만 제대로 박혀 있으면 되는 게 아니냐고 했지만, 지금 서랍 속 C의 청첩장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결혼식이 끝나도 한 장의 청첩장이 유효한 이유는 두 사람이 골라 담은 말들 때문이니까.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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