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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의사·한의사 모이니 치료비 ‘뚝’… 협진 시범사업 점검

서울 자생한방병원 양·한방 의료진이 한자리에 모여 목디스크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생한방병원 제공
 
광주 청연한방병원의 ‘패밀리 협진’ 장면. 재활의학과 전문의(오른쪽 네 번째)와 한의사(오른쪽 첫 번째) 등 의료진이 지난 19일 뇌출혈 환자의 수술 후 상태와 재활치료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광주=민태원 기자








목디스크 수술 갈림길에 선 남성
자신에게 맞는 치료방법 찾아
양·한방 두 곳서 건보적용 가능
협진 통해 치료기간 대폭 단축

뇌출혈로 팔·다리 못 쓰던 환자
물리치료·침 뜸 등 함께 받으며
짧은 거리 보행 등 빠르게 호전
고령화로 협진 필요성 더 커질 듯


직장인 A씨는 지난해 11월 갑작스러운 목통증과 손·팔저림을 느꼈다. A씨는 곧바로 정형외과를 찾았다.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어 본 결과 목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술이 꺼려진 A씨는 다른 병원을 찾았지만 똑같은 얘기를 들었다. 그는 정말 수술이 답인지, 나한테 가장맞는 치료법이 뭔지 알고 싶었다. 그는 의사와 한의사가 함께 환자 상태를 살피고 최적의 치료법을 제시하는 의료기관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A씨는 서울 자생한방병원을 찾아 ‘의사-한의사 한자리 진료’를 받았다. 영상의학과와 재활의학과 전문의, 한방재활의학과 한의사 등이 환자를 중심으로 한곳에 모여앉았다. A씨의 MRI 영상을 본 뒤 중증이지만 마비될 정도로 심하지는 않은 만큼 당분간 수술보다 추나치료(손이나 신체 일부를 이용해 뼈나 관절 틀어짐 등을 바로잡음)와 침, 한약 치료를 해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를 통해 통증을 완화하고 신체 균형을 바로잡으며 회복력을 높이자는 취지다. 이후 A씨는 3개월째 외래로 한방 통합치료를 받으며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

의사-한의사 한곳에서 본다

디스크 환자 가운데는 A씨처럼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꺼리는 이들이 많다. 이는 연령층을 가리지 않는다. 젊은 환자는 이른 나이에 수술 받는 걸 겁내고, 고령 환자는 수술 자체가 부담스럽다. 수술 후유증과 부작용을 걱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의사와 한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정부도 이런 환자 수요를 감안해 2016년 7월부터 외래진료 시 의-한(양·한방) 협진 활성화 3단계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등 국공립병원 8곳과 민간병원 5곳 등 모두 13개 의료기관에서 이뤄진 1차 시범사업은 최근 마무리됐다. 시범사업 기관을 45곳으로 대폭 늘린 2차 시범사업이 지난해 11월 말부터 시작돼 올해 11월까지 진행된다. 협진 대상은 520개 질환으로 질환별 표준 협진 모형과 수가(의료서비스 대가) 모델을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의-한 협진 제도는 2010년부터 도입됐지만 2015년 기준 협진 병원은 4.6%(3205개 중 148개)에 그치는 등 양방 의료기관의 참여가 저조했다. 협진 한방병원은 68.8%(260개 중 179개)였다. 여기에는 한방에 대한 양방 의료계의 불신이 한몫하고 있지만 협진 절차가 까다롭고 건강보험 적용 또한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즉 같은 날, 같은 질병으로 동일 의료기관에서 의-한 협진을 받을 경우 나중에 받은 의료 행위(검사, 시술 및 처치)는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비록 그 행위가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포함돼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김남권 부산대 의-한협진 모니터링센터장은 “이 때문에 후발 진료비용을 100% 본인이 부담하거나 다른 날 병원을 재방문해 한쪽 과의 진료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컸다. 이로 인한 교통·시간 비용이 이중으로 발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범사업에선 후발 행위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도록 해 환자 부담을 줄였다. 1차 시범사업에서 제외됐던 양·한방 처방 약제가 2차 시범사업부터 추가됐다. A씨가 찾은 자생한방병원은 2차 시범사업 기관으로 선정됐다. 병원 측은 “A씨는 같은 날 양·한방 협진을 통해 시범사업 전과 비교해 약 50%의 비용 절감 혜택을 봤다”고 했다.

환자 편의성, 만족도 높아

의-한 협진은 환자의 편의성과 만족도를 높여준다. 여러 의료기관을 찾거나 다시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 그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양방과 한방의 진단 및 처방을 모두 들을 수 있어 환자 자신에게 맞는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복지부와 부산대 의-한협진 모니터링센터가 1차 시범사업 협진 참여자 4467명을 분석한 결과 같은 날 협진 진료를 받는 비율이 시범사업 전 1.7%에서 시행 후 9.1%로 증가했다. 의-한 협진을 통해 치료기간 단축 효과도 확인됐다. 안면마비로 시범기관을 찾은 환자 중 협진군의 치료기간은 45일로 비협진군(102일)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었다. 허리통증 환자의 경우 협진군(25일)과 비협진군(114일)의 치료기간은 4.6배나 차이 났다.

시범사업 참여 환자 75.4%가 협진 치료 효과에 만족했고 70.9%는 “시범 기관을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참여 의료진의 88.9%는 “환자 편의 도모 면에서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다만 진단 효율성(55.6%)과 치료 효율성(59.3%)은 다소 낮게 나와 더 세밀한 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과거 의-한 협진은 양방은 진단, 한방은 치료라는 형태로 굳어져 상호 소통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의사, 한의사가 아예 한곳에 모여 환자 상태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환자 치료 계획을 제시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2차 의-한 협진 시범기관으로 선정된 광주 청연한방병원이 또 다른 예다. 지난달 19일 찾은 이 병원 재활치료실에서는 뇌출혈 환자 권모(60)씨를 대상으로 이른바 ‘패밀리 협진’이 한창이었다. 권씨의 재활치료를 맡은 재활의학과 전문의와 한의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이 모여 환자의 상태와 치료법, 경과를 공유하고 최선의 치료 방안을 찾는 협진 방식이었다.

4개월 전 왼쪽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진 뒤 4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은 권씨는 오른쪽 팔·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고 말도 어눌했다. 하지만 두 달 전 이 병원으로 옮겨와 의-한 재활 협진을 받으면서 상태가 상당히 나아졌다. 물리·작업·언어치료 등 양방 치료와 침 뜸 등 한방치료가 함께 이뤄졌다. 주치의인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초기엔 보행이 불가능했으나 현재 지팡이를 짚고 짧은 거리를 걷는 게 가능해졌고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 일상생활 동작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씨는 “한곳에서 한방과 양방 치료를 함께 받을 수 있어 더 빨리 좋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도덕적 해이 막아야

김남권 센터장은 “인구 고령화에 따라 뇌졸중 같은 신경계, 척추·관절 등 퇴행성 근골격계 질환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의-한 협진 필요성은 한층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개선·보완해야 할 점도 없지 않다. 양·한방 의료진 간 의견이 충돌할 때 조정 방안이나 양약과 한약 동시 처방으로 부작용이 발생할 때 책임소재 문제 등에 대한 매뉴얼 마련이 필요하다. 의사-한의사 간 복잡한 협진 의뢰 절차 간소화도 이뤄져야 한다.

지난 1년간 200여건의 의-한 협진 진료를 진행한 국립중앙의료원 김진원 한방진료부장은 “의-한 협진이 진료 수익과도 직결돼 있어 중복 진료로 인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의료기관의 자정 노력과 규제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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