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해리 왕자는 英 왕실 ‘최고의 보험’

영국의 해리 왕자(오른쪽)가 지난 25일(현지시간) 약혼녀 메건 마클과 잉글랜드 노퍽주 세인트 메리 막달레나 교회의 성탄절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AP


술·마약 하던 골칫덩이서
개방·포용의 아이콘으로
불륜남 아버지가 추락시킨
왕실 이미지 회복에 큰 역할


미국 여배우 메건 마클(35)과 결혼을 앞둔 해리(33) 왕자가 21세기 영국 군주제의 최고 보험이 됐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과거 왕실의 문제아였던 해리 왕자가 왕실에 대한 대중의 회의론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일간 가디언은 27일(현지시간) 사설을 통해 해리 왕자가 BBC 라디오4의 객원 진행자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인터뷰한 것을 필두로 최근 모습에 대해 오래된 왕실 체제의 공식 해설자로 자리매김했다고 분석했다. 할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지탱해 온 ‘왕실 문화’를 요즘 젊은 세대들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리 왕자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해리 왕자는 과거 왕실의 이미지를 악화시키는 골칫덩이였다. 미성년자이던 10대 시절 술과 마리화나를 즐기는 모습이 타블로이드지의 헤드라인을 종종 장식했다.

훗날 그는 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른 죽음 때문에 방황했다고 고백했다. 이후 2005년부터 2015년까지 군복무하는 동안 아프가니스탄전에 투입돼 공을 세우며 이미지를 바꿨다. 제대해서는 상이군인 올림픽인 ‘인빅터스 게임’을 창설하는 등 자선활동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에 앞장서는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특히 흑백 혼혈의 연상 이혼녀에 페미니스트인 마클과의 러브스토리는 그의 이미지에 화룡점정을 찍는 순간이었다. 결혼 소식은 보수적으로 알려진 영국 왕실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평가와 함께 왕실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한층 우호적으로 만들었다. 여왕에서 찰스 왕세자로 왕위 계승이 머지않은 예민한 시기에 왕실과 대중이 소통하는 데 큰 힘이 됐다는 게 가디언의 분석이다. 뉴욕타임스도 “마클이 군주제를 구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영국 왕실의 현재 상황과 함께 이번 결혼의 의미를 평가한 바 있다.

냉정하게 말해 현재 영국 왕실이 국민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은 91세인 여왕의 권위 덕분이다. 찰스 왕세자는 불륜과 이혼 등으로 왕실 이미지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역설적이게도 다이애나의 비명횡사는 군주제 폐지론을 잦아들게 했지만, 매력적인 관광상품으로서의 기능 이상으로 세금을 많이 잡아먹는 왕실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가 대중에게 인기가 높지만 여왕 사후 군주제의 지속 여부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특히나 인기 없는 찰스 왕세자가 왕실의 정치적 중립 원칙을 깨고 국정 개입을 시도한 것이 드러나는가 하면 왕실 방계 가문에서 돈 문제로 구설을 일으킬 때마다 군주제 회의론이 계속 확산됐다.

영연방에 속하는 호주의 경우 이미 맬컴 턴불 총리 취임 이후 입헌군주제를 공화제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피력해 왔다. 다만 공화제 찬반 투표는 여왕 퇴위 후에 실시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호주 언론은 “해리 왕자의 결혼이 호주 공화주의자들을 좀 더 힘들게 만들었다” “해리 왕자의 결혼은 축하하지만 공화제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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