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우리 엄마들



‘엄마들’에 관한 일이 많은 요즈음이다. 우선은 작은이모. 소프라노 가수였던 이모는 독일 연수도 다녀오고, 오페라에도 출연하고, 합창단을 꾸려서 해외공연도 가는 등 활동이 왕성했다. 그런 이모가 기억을 잃어간다. 자식도 잘 못 알아보니 조카 알아볼 리가 없다. 인사를 하면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옅은 미소만 띤 채 빤히 쳐다본다. 며칠 전 만난 이모는 여전히 고운 얼굴이었지만 말은 더 없어졌다. 작년만 해도 드라이브하는 차 안에서 노래도 불렀는데.

그리고 누구보다 활달했던 작은엄마. 눈꺼풀의 선명한 파란색 아이섀도는 어린 내게 강렬한 매혹이었고 작은엄마의 상징이었다. 잘 웃고 유쾌했던 작은엄마가 암을 선고받아 병원에 누워 있다는 소식이다. 작은아빠 돌아가신 뒤 혼자 있는 집이 무섭다더니, 무섭지 않은 남편 곁으로 얼른 가고 싶었을까. 아주 친한 친구의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받았다. 오랜 투병 끝이었는데, 자손들 모두 모인 가운데 복되게 가셨다고 친구는 담담하게 알렸다. 연휴 중 제주에서 오가기가 쉽지 않으니 오지 말라고 미리 말리는 속 깊은 내 친구.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엄마를 보내는 그녀를 전화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이모와 작은엄마를 방문한 뒤 우리 엄마가 기운을 잃었다. 입맛도 없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들처럼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낸 세대는 흔치 않을 것 같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고, 청소년기에는 끔찍한 전쟁을 겪었다. 전쟁 뒤 지독한 가난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가정을 일구고 아이들을 키워냈다. 자식들이 좀 허리 펴나 싶더니 손자들은 부모보다 더 어렵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허리 꺾여 있다. 엄마들이 계속 떠나는데, 그냥 이렇게 보내면 안 된다. 그 마음에 보람과 자랑과 온기를 채워드려야 한다. 우선 혼자인 우리 엄마부터 모시고 내려와야겠다. 잠시나마 따뜻한 제주의 반짝이는 풍광을 즐기게 해드려야겠다. 밖은 세찬 바람 불더라도 안에서는 안온함을 느끼고 편안해하시면 참 좋겠다.

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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