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페셜] 이랬던 베이징에 ‘극약 단속’ 하니… ‘大氣개벽’

중국이 겨울철 들어 더욱 강력한 대기오염 방지 대책을 추진하면서 최근 베이징의 대기질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위 사진은 지난 8월 26일 베이징의 모습이고, 아래는 지난 24일 파란 하늘이 눈부신 베이징 풍경이다. 하늘은 맑아졌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서민들이 생업에 지장을 받아 불만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AP뉴시스, 노석철 특파원




중앙정부, 초강력 환경보호법 시행
‘지방정부 → 시·현’ 도미노 전방위 압박
“연말까지 청정에너지로 전면 대체”
오염 유발 업체·석탄난로 퇴출 밀어붙여

영세업자들 막무가내 공장 폐쇄로 내몰려
석탄 때던 농촌선 대책 없이 추위로 고통

대체 에너지로 뜬 천연가스 소비 급증 여파
전세계 가스 수요 20% 가까이 늘며 요동


중국 베이징은 짙게 깔린 스모그와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도시의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난방연료로 석탄을 쓰는 겨울철에는 그야말로 스모그 지옥이었다. 올해 초에도 공기질 지수(AQI)가 300(정상 수치 50 이하)을 오르내리는 날이 적지 않았다. 지난 11월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기 직전에도 스모그가 베이징 하늘을 뒤덮었다. 그런데 최근 베이징 등 수도권 지역의 공기가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다. 불도저식 행정이 만들어낸 결과다. 대책 없이 석탄난로부터 철거하는 바람에 농촌 지역 주민들은 추위에 떨고 있다. 영세하고 낙후된 오염 유발 업체들은 무더기 폐쇄됐다. 그들 역시 서민들이다. 그래도 스모그와의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서민들의 고통을 감싸는 게 우선일까, 스모그 퇴치가 우선일까. 깨끗해진 공기에 여론은 흔들린다.

확 좋아진 베이징 공기

요즘 베이징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의 대기질은 상당히 좋아졌다. 징진지(베이징·톈진·허베이성)의 초미세먼지(PM2.5, 지름 2.5㎛ 이하) 농도를 보면 2013년 ㎥당 106㎍에서 2014년 93㎍, 2015년 77㎍, 2016년 71㎍으로 4년 사이 33%나 감소했다. 베이징은 2013년 89㎍에서 2015년 81㎍, 2016년 73㎍으로 낮아지더니 올 11월까지 58㎍으로 뚝 떨어졌다. 불과 2년 만에 30% 가까이 낮아졌다.

지난 1∼2월 악천후로 PM2.5 농도가 전년 대비 70% 증가했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 공기는 더욱 좋아진 셈이다. 특히 11월 한 달을 보면 PM2.5 농도는 전년 동기 대비 54% 감소한 46㎍를 기록했다. 공식 난방을 시작한 지난달 15일 이후에는 38㎍를 기록해 더욱 낮아졌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치 25㎍에는 못 미치지만 놀랄 만한 변화다. 베이징에서 ‘심각한 스모그’ 발생일수도 지난해 58일에서 올해 21일로 줄었다.

정부와 시 당국이 단속에 올인한 결과다. 지난 5월 취임한 차이치 베이징시 당 서기와 천지닝 시장은 강도 높은 스모그와의 전쟁을 벌여 왔다. 트럼프 대통령 방중 때는 건설공사를 중단시키고 바비큐까지 금지시켰다. 차이치는 이외에도 베이징의 스카이라인을 ‘밝고 맑게’ 만든다며 건물 옥상 간판을 모두 철거하고, 농민공 밀집 거주지역에 대한 강제 철거도 단행했다.

관료들 대기질에 사활 걸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11월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최근 나는 아침마다 가장 먼저 베이징의 대기오염을 체크한다”며 “중국 전역에서 매일 푸른 하늘과 맑은 강을 보는 것이 희망”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19차 공산당대회 업무보고에서도 ‘환경보호’와 ‘생태 문명’을 수차례 강조했다.

시 주석 체제 들어 중국은 강력한 환경 정화운동을 펼쳤다. 중앙정부는 2015년에 지방정부의 책임과 벌금 등을 대폭 강화한 초강력 환경보호법 시행에 들어갔다. 중앙정부의 환경감찰팀은 2016년부터 지금까지 31개 성에 대한 감찰을 진행했다. 지방정부가 환경 위반을 눈감아주는 행위를 적발해 처벌하는 게 임무다.

지방 관료들은 자리가 위태롭게 됐으니 대기오염과의 전쟁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대기질 순위는 지역별로 매달 발표된다. 실적이 나쁘면 경고를 받고 거액의 벌금을 물기도 한다. 산시성은 지난 10월 대기질 개선 실적이 좋은 다퉁시에 910만 위안(약 15억원)의 장려금을 주고, 최악의 실적을 보인 진청시에는 1590만 위안(약 26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지도자들을 압박하고, 지방정부는 시와 현급 간부들의 목을 죄고 있는 것이다.

중앙 환경감찰팀은 지난해 7월부터 법률위반 행위를 눈감아준 공무원 1만2000여명을 처벌했다. 공개사과에서부터 사법기관 이송, 형사처벌 등 다양한 처분을 받았다. 지난달엔 헤이룽장성의 하얼빈 등 4개 시 책임자들이 환경 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앙정부에 소환돼 교육을 받아야 했다. 내년부터는 각 지방 지도자급 간부가 이임할 때 생태환경보호 책임을 다했는지 감사를 받아야 한다. 환경보호 분야가 관료들의 생존을 결정하는 전쟁터가 된 것이다.

마구잡이 행정에 부작용 속출

중앙정부의 밀어붙이기식 드라이브에 갖가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중앙정부의 감찰을 앞두고 사전 조사도 없이 공장들을 무조건 폐쇄시키는 행태가 빚어졌다. 산시성 신저우에서는 건설현장 노동자가 밤에 강추위를 견디기 위해 타이어로 불을 피우다 걸려 구금되기도 했다. 그는 5일간 구류를 살았다. 이후 정부가 힘없는 사람들만 타깃으로 삼는다는 불만이 커졌다.

대체난방 수단도 없이 석탄연료 사용을 금지하면서 북부 지역 농촌은 추위에 떨고 있다. 가스도 없고 연탄도 때지 못해 1회용 가스버너로 밥을 짓고 있다는 불만도 쏟아졌다. 일부 지역에선 학교에 난방시설이 없어 어린 학생들이 추운 교실 대신 햇빛이 비치는 운동장에서 수업을 하기도 했다. 중앙정부는 2013년 미세먼지 농도 감축 계획을 수립해 2017년까지 석탄을 천연가스·전기 등 청정에너지로 전면 대체키로 했다. 올해 말로 기한이 다가오자 가스·전기난방이나 가스공급 시설이 없는데도 석탄난로부터 철거하면서 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전 세계 천연가스 시장도 들썩

대기오염 전쟁 때문에 천연가스 시장 판도도 요동치고 있다. 중앙정부는 북동부 지역의 가스 공급이 부족해지자 서부와 남부 지역에서 가스를 대량 보내고 있다. 북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의 타림 가스전에서 올해 1년간 동부 지역으로 운송한 천연가스가 200억㎥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남부 광둥성에서도 최근 매일 725만㎥의 천연가스를 북쪽으로 보내고 있다. 또 중국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3371㎞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도 시작됐다. 중국이 석탄연료 사용을 금지하면서 올해 천연가스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20% 가까이 늘었다.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2년 내 최고치로 상승하면서 전 세계 석탄 수요도 끌어올렸다. ‘스모그와의 전쟁’이 올겨울 중국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 에너지 시장까지 뒤흔든 것이다. 목표가 정해지면 무조건 밀어붙이는 중국식 행정이 베이징의 하늘을 바꿨지만 곳곳의 ‘고통’을 수반한 ‘푸른 하늘’이어서 비난도 적지 않다.

속도전

환경오염 유발 기업·업종 대상
행정력 총동원해 초스피드 퇴출
수치 조작·봐주는 행위엔 엄정 조치


중국 정부는 스모그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온갖 구호를 동원해 속도전을 펼쳤다. ‘파란 하늘’ 명분 앞에 영세기업들이 무더기 영업정지나 폐쇄 조치를 당했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푸른 하늘 지키기 전쟁(藍天保衛戰)’을 선언했다. 스모그와의 전쟁을 달리 표현한 말이다. 오염물질 배출 및 수치 조작 행위, 공무원의 느슨한 법집행에 엄정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 취임한 천지닝 베이징 시장도 푸른 하늘 지키기 전쟁을 선언하고 역대 가장 엄격한 단속을 시작했다.

베이징에선 지난 4월 말부터 7월 말까지 ‘100일 행동’이란 구호 아래 공장과 식당, 오수처리장, 소각시설, 자동차 배기가스 등에 대한 단속이 진행됐다. 이 기간 적발된 환경 위반 사건은 7721건, 처벌금액은 8361만 위안(약 142억원)에 달했다.

‘산란오(散亂汚) 기업’에도 철퇴가 내려졌다. 흩어져 있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오염기업을 지칭하는 말로 오염물질을 과다 배출하는 낙후 업종의 기업들이다. 베이징시는 올해 상반기 2860개 산란오 기업을 폐쇄 또는 이전 조치했으며 연내 5500곳 퇴출을 목표로 내걸었었다. 산란오 기업을 정리할 때는 ‘2단3청(2斷3淸)’ 원칙이 적용된다. 우선 전기와 물 공급을 끊은 뒤 원자재와 제품, 설비를 제거하는 수순을 말한다. 지난 9월까지 베이징과 톈진, 허베이성, 산시성, 산둥성, 허난성 등 6개 성시에서 17만곳 이상의 산란오 기업이 이런 식으로 정리됐다.

베이징에선 외곽의 ‘공업대원(工業大院)’이 철거되고 있다. 공업대원은 낙후된 환경오염 유발 업종이 산재된 공업구다. 베이징의 130개 공업대원 중 60곳이 올해 철거 완료된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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