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늙지 않는 영화들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실시간 검색어 목록에서 ‘967달러’를 봤다. 그 구체적인 금액의 출처는 영화 ‘나 홀로 집에’였다. 주인공 케빈이 시킨 룸서비스 비용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 홀로 집에’는 1990년에 개봉했지만 지금도 이맘때면 다시 소환된다. 확실히 크리스마스는 유년의 것이어서 우리가 아직 아이였을 때 봤던 영화와 책, 노래, 당시의 어떤 기분들이 지금도 크리스마스의 기준이 된다. 어른들은 그걸 단지 재현하려고 할 뿐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며칠 후 나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볼 것이다. ‘나 홀로 집에’가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는 영화라면 이건 해피뉴이어를 말하는 영화다. 얼마 전 20대 학생들에게 이 영화에 대해 얘기했다가 아는 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나는 이걸 로코의 바이블처럼 여겼던 시대의 사람이니까. 지금 20대가 이 영화를 처음 본다면 어떻게 느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는 화사하게 박제된 어느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청춘들은 취업난에 대한 고민이 적어 보이고, 금수저가 아닌 이상 연애와 생존을 분리할 수 없는 요즘에 비하면 확실히 풍요로워서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영화가 시작되면 일종의 향수에 젖게 되는데, 이 영화를 만났던 그 무렵이 함께 소환되어서다. 그 환기의 힘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옛 영화를 본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고민들, 그리고 영화 속에만 있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래서 L과 나는 같은 영화를 6년째 보고 있지만 지겹지는 않다.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이 지나면 샐리에게 해리가 달려와 고백할 것이다. 밖이 71도(21도)인데도 춥다는 당신을, 샌드위치 주문에 한 시간이 걸리는 당신을, 잠들기 전까지 대화할 수 있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우리는 그 고백의 형식에 지난 한 해의 이야기를 넣어볼 것이다. 해리코닉주니어의 음악을 틀어놓고, It had to be you. 너여야만 한다고, 그렇게.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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