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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대한 강의를 할 때 명화를 끌어다 쓴다. 예를 들면, 카스파 프리드리히의 ‘창가의 여인’이라는 작품과 프란시스코 고야의 ‘알바 공작부인의 초상’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묻는다. “자기 모습을 마음속에서 그려봤을 때 어느 그림과 비슷한 것 같나요?” 사람들은 누구나 실제 모습과는 다른 자기 이미지를 품고 산다. 객관적 내 모습이 아니라 감정으로 얼룩지고, 욕망이 투영된 이미지가 내면을 지배하고 있다. 내가 상상하는 내가 당당하면 현실에서도 그렇게 행동하지만, 창가에 서서 그림자 진 뒷모습으로 어깨를 떨군 모습이 떠오른다면 삶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물어보자. “내 마음속 나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 그림처럼 보일까?” 명화들을 스르륵 훑어보며 마음과 공명하는 것을 찾아봐라. 그 그림이 지금 내 자존감의 높낮이를 말해줄 수 있으니까.

연말이면 “내년에는 달라져야지”라는 각오를 하게 마련인데, 이때도 말보다 상상 속에 그림을 그려보면 좋다. 매일 운동해서 탄탄해진 다리 근육과 그 느낌을 떠올려도 좋고, 회식자리를 줄이고 빨리 퇴근해서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멋진 아빠의 모습을 그려봐도 좋다. 영화 속 주인공 이미지에 내 모습을 덧칠해보는 거다.

“이게 무슨 시크릿 같은 허무맹랑한 소리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시크릿의 비밀은 꿈을 강렬하게 열망하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있다. 시합을 앞둔 운동선수가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몸과 마음을 다잡고, 무대에 오르기 전에 눈을 감고 완벽하게 연주해내는 자기 모습을 심상으로 그려내는 음악가들이 괜히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상상만으로도 실제 움직일 때와 똑같은 뇌 부위가 활성화되면서 되고자 하는 내 모습에 한 걸음 더 가도록 준비시킨다. 그렇게 되기 위한 신체 자원을 계발시켜주는 것이다.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기보다 다가올 시간을 위해 마음속에 희망과 기대를 불어넣어 보자. 새해에 이룰 꿈을 소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돼 가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이미지화하고, 그것이 이뤄졌을 때의 내 모습을 심상으로 만들어 보자. 분명 내년 이맘때쯤에는 후회보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을 것이다.

김병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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