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지구촌 꿀벌 실종사건… 벌벌 떠는 인류









지구촌 꿀벌 개체수 급감

꿀벌, 생태계 유지에 없어선 안될 ‘중매쟁이’
100대 농산물 생산 과정 기여도 71% 육박
최근 美·유럽에서 ‘벌집군 붕괴현상’ 잇따라
바이러스·진드기 피해 속 개체수 감소 빨라져

국내서도 낭충봉아부패병·부저병 매년 기승
등검은말벌 등 외래종 유입도 토종 꿀벌 위협


2010년 유엔환경계획(UNEP)은 뜬금없이 꿀벌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으로 12쪽짜리 짧은 보고서를 발표했었다. 표지에는 ‘떠오르는 이슈’라는 문구도 넣었다. 다양한 환경 문제를 다루는 곳이지만, 특정 동물에 초점을 맞춘 보고서를 내기는 이례적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지는 ‘원인불명의 현상’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꿀벌의 주식인 꿀을 가져오는 일벌이 ‘가출한’ 뒤 돌아오지 않아 여왕벌과 유충이 폐사하는 벌집군 붕괴 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이다.

벌집군 붕괴 현상은 미국에서 2006년부터 본격화했다. 2년간 미국 내 양봉업체 중 29%가량이 CCD 발생을 보고했다. 해당 양봉업자가 기르던 꿀벌의 75%가 사라졌다. 벌집군 붕괴 현상은 유럽으로도 번졌다.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UNEP는 잔류농약 성분이 꿀벌의 방향감각에 영향을 줬거나 기후변화 영향을 받았다는 가설만 제시했다. 아직도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원인을 모르니 해법도 없다. CCD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을 괴롭히고 있다.

꿀벌의 ‘먹거리 경제학’

언뜻 ‘꿀벌이 사라지는 게 뭐가 문제라고 유엔까지 나서나’ 싶겠지만 꿀벌의 역할을 알고 보면 웃어넘기기 어렵다. 통상 일벌은 꿀을 찾기 위해 하루 40∼50회 비행을 한다. 꽃을 찾아 꿀을 채취하는 작업에 열중한다. 꿀 1㎏을 얻으려고 지구 한 바퀴 거리에 해당하는 약 4만㎞를 이동한다. 이때 일벌의 몸에 묻는 화분(花粉)은 식물의 교배를 돕고 과실을 맺게 한다. 생태계 차원에서 보면 충실한 중매쟁이인 셈이다. 중매쟁이가 사라지면 식물의 번식은 물론 식물의 과실을 먹는 인간의 식탁에 문제가 생긴다.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농작물은 꿀벌 의존도가 높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00대 농산물 생산량의 꿀벌 기여도는 71%에 육박한다. 당장 꿀벌이 없다면 100대 농산물의 생산량이 현재의 29% 수준으로 줄어든다.

농작물별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미국 뉴욕 코넬대 모스 칼데런 교수팀이 2000년 내놓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과, 양파, 당근의 꿀벌 기여도는 90%에 이른다. 견과류 가운데 아몬드의 경우 꿀벌 의존도가 100%다. 꿀벌이 완전히 사라지면 아몬드 구경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농작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꿀벌의 역할은 꽤 크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벌집군 붕괴 현상이 벌어졌을 때 전 세계 전문가 집단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바이러스나 진드기 때문에 꿀벌 개체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벌집군 붕괴 현상까지 겹치면 꿀벌 감소가 한층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생산량이 줄면 농작물 가격은 치솟기 마련이다. 그리고 중매쟁이인 꿀벌의 몸값은 높아지게 된다. 칼데런 교수팀은 꿀벌이 농산물에 기여하는 가치를 연간 146억 달러(약 15조9213억원)로 추산했다. 미국에만 한정한 계산이기 때문에 이를 세계 전체로 환산하면 천문학적 금액으로 뛸 수 있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도 4년 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과언은 아니다.

한국은 안심해도 될까

한국도 꿀벌의 수혜를 입기는 매한가지다. 안동대 연구진이 2008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사과나 딸기 등 16개 농산물에 꿀벌이 기여하는 가치는 약 6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로열젤리 등 꿀벌의 직접 생산물 가치(3500억원)보다 17배 이상 높다. 농작물별 기여도는 해외 연구 결과와 다소 차이를 보였다. 수박, 멜론, 딸기 생산량에 꿀벌이 기여하는 비율은 80.0%로 나타났다. 사과는 68.7%로 해외 연구 결과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그나마 다행은 아직 한국에선 벌집군 붕괴 현상에 다른 피해 보고가 없다. 다만 안심할 수는 없다. 다른 질병이 꿀벌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법정 전염병인 ‘낭충봉아부패병’과 ‘부저병’이 큰 골칫거리도 떠올랐다. 낭충봉아부패병은 꿀벌 유충에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유충이 말라 죽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1년 처음 국내에서 발생했다. 당시 132건의 발생 건수가 보고됐다. 한 해 동안 벌집 3343개에서 폐사가 일어났다.

꿀벌의 유충을 썩게 만다는 부저병도 매년 기승이다. 2013년에는 건수로 29건이 발생했지만 피해 규모는 전례 없이 컸다. 이 해에만 부저병으로 사라진 벌집이 1만5814개에 달했다.

최근 들어서는 해외에서 유입된 외래종이 토종 꿀벌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외래종인 작은벌집딱정벌레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이 곤충은 벌집에 기생하면서 벌집과 알을 갉아먹는다. 먹이인 꿀까지 부패시켜 꿀벌이 살 수 없게 만든다. 작은벌집딱정벌레는 지난해에만 벌집 713개에 피해를 줬다.

2003년 국내에 유입돼 전국으로 확산한 등검은말벌도 위협적이다. 등검은말벌의 주식이 꿀벌이다. 먹이의 약 85% 정도를 꿀벌이 차지한다. 피해 규모가 집계된 건 없다. 등검은말벌의 벌집 1개(3000∼5000마리)는 주변 꿀벌의 벌집 10개를 먹이로 삼아 공격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위험 요인이 다양하지만 정부 지원은 미적지근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에서 2만2722개 농가가 양봉업에 종사한다. 이들이 사육하는 벌집은 215만5180개로 집계됐다. 2011년 병충해 피해로 153만1609개까지 줄었다가 최근 회복 흐름을 타고 있다. 그러나 충분치 않다. 정부는 이명박정부 때인 2010년 양봉산업 육성 종합대책을 내놓고 사육 벌집의 수를 2015년 258만8000개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했었다. 정부는 꿀벌이 농작물 생산량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면서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지금 정부 지원은 끊긴 상태다. 양봉업계 관계자는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진흥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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