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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감독 “끝났나 했던 영화 인생, 다시 시작해” [인터뷰]

‘기억의 밤’으로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복귀한 장항준 감독. “글 쓰는 건 고통스럽지만 연출은 언제나 재미있다”는 그는 “무생물의 상태였던 활자가 배우를 통해 살아 숨 쉬는 창조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이 재미있는 걸 오랜만에 하니까 더 재미있더라”고 웃었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영화 ‘기억의 밤’ 촬영 당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무열, 장항준 감독, 강하늘(왼쪽부터).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영화광인 아버지와 딸에게
새 작품 보여줄 수 있어 기뻐
모든 영화인은 히치콕 후예
앞으로 되든 안되든 영화 집중”

살인 둘러싼 미스터리 스릴러
시나리오 1년 동안 직접 집필


9년 만에 고향 같은 충무로로 돌아왔다. ‘영화감독으로서 난 이제 끝났나?’ 낙담했을 무렵, 전부 내려놓고 신인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한 영화 ‘기억의 밤’을 세상에 내놓았다. 장항준(48) 감독의 지금 심정을 과연 어떻게 짐작해볼 수 있을까.

“어릴 적 공부하려고 방에 앉아있으면 아버지가 ‘주말의 명화’를 보자며 부르곤 하셨어요. 영화광이셨죠. 아버지께서 아직 정정하실 때 제 영화를 보여드리게 되어 너무 좋아요. 아빠가 영화감독이라는 말만 들었지 정작 영화를 보지 못했던 초등학교 5학년 우리 딸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도 기쁘고요. 저에겐 그런 의미가 가장 큽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장 감독에게 이번 작품의 의미를 물으니 그의 입에선 가족 이야기부터 나왔다. 아내인 김은희 작가도 요즘 잠을 못 잔단다. ‘오빠, 진짜 잘됐으면 좋겠다.’ 그 말에 담긴 진심을 모를 리 없다. 장 감독은 “이런 가족이 있으면 인생이 즐겁지 않느냐”며 미소를 지었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기억의 밤’은 과거의 한 살인사건을 둘러싼 형(김무열)과 동생(강하늘)의 엇갈린 기억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다. 모범생이었던 형이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낯선 모습으로 돌아오고,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동생은 그런 형의 흔적을 쫓다 자신의 기억마저 의심하게 된다.

장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가족을 상실한 두 남자의 비극”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평소 저의 지론 같은 건데,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돼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도 실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있다는 주제를 극으로 푼 거죠.”

‘타고난 이야기꾼’ 혹은 ‘천재 스토리텔러’라 불리는 장 감독이 1년을 꼬박 쓴 시나리오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도 촘촘한 연결고리를 놓치지 않고 이야기 구조를 확장시켜가는 전개에선 어떤 결기마저 느껴진다. 코미디 장르에 일가견이 있던 그가 드라마 ‘싸인’(SBS·2011) 이후 내놓은 또 한 편의 흥미로운 스릴러인 셈이다.

“영화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채플린의 후예이자 히치콕의 후예’예요. 그들의 피가 우리 몸속에 흐르고 있죠. 어느 것이 발현되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장르는 외피일 뿐이에요.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가 중요하죠. 채플린은 코미디를 통해 사회비판적 인식을 표현했고, 히치콕은 스릴러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한 것처럼요.”

영화 ‘라이터를 켜라’(2002)로 화려하게 데뷔한 장 감독은 한동안 영화계를 떠나있었다. 영화 연출작은 ‘불어라 봄바람’(2003) 이후 전무했다. OCN 방영용으로 제작했다 극장에서도 상영한 ‘전투의 매너’(2008)를 포함해 9년 만의 복귀다. 그간 드라마를 선보이거나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었으나 그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사실 돈 때문이었죠. 가장이니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잖아요. 어쩌다가 ‘싸인’이란 드라마를 하게 됐는데 그 작품이 되게 잘됐어요. 그때부터 돈 걱정을 안 하고 산 것 같아요. 풍족한 시절이 시작됐죠. 근데 계속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제 목표는 돈이 아니니까.”

장 감독은 “60세가 되어서도 영화 현장을 누비고 싶다”고 했다. “올해가 다 갔으니 이제 10년 남았네요. 그동안 몇 개의 작품을 더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10년 뒤 그 해에 제가 현장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영화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되든 안 되든.”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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