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병훈] 지하철에서



지하철에서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서울 지하철이지만 승객 중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를 가끔 보게 된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걷는 사람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오랜 관습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가만히 서 있으려고 해도 뒷사람이 재촉하는 바람에 걸을 수밖에 없다. 에스컬레이터는 톱니를 돌려 움직이는 시설이다. 보통 체중인 사람도 뛰면 수백 킬로그램으로 가중된다. 작은 충격에도 톱니가 부서질 수 있으므로 걷거나 뛰어서는 안 된다.

며칠 전 전철 안에서 본 일이다. 젊은 여인이 다리를 꼬고 앉아서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옆자리의 중년 여인은 신발이 옷깃에 닿을세라 다리를 오므리고 불편한 자세로 두어 정거장을 지났다. 중년 여인이 안내 방송을 듣고 일어섰다. 앞에 서 있던 노신사가 옆 사람을 둘러보면서 앉아도 되느냐는 듯 눈짓을 했다. 애써 무표정한 얼굴을 보이는 분도 있고 어떤 이는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그때까지도 젊은 여인은 다리를 내릴 줄 몰랐다. 좁은 자리에 비집고 앉은 노신사가 여인을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애써 눈길을 피했다. 노신사가 조용한 목소리로 “이봐요. 다리 좀 내리지요.” 그래도 대답이 없자 “족 좀 내리라고요.” 이번에는 여인이 발끈 화를 냈다. “족이라니.” 두 사람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겠거니 했는데 노신사가 혼잣말로 “족 아니면 족발인가.” 그녀는 못 들은 척했다. 옆에서 보자니 웃음이 나오는 한편 속이 다 후련했다. 그래도 발을 내리지 않았다. 반응이 없자 노신사가 2단계 행동으로 들어갔다. 여인 쪽으로 자신의 넓적다리 위에 다른 발을 얹었다. 반가사유상이 되었으니 구두가 그녀의 스커트 옆에 닿을락 말락한 자세가 되었다. 여인은 혼자 씩씩거리다 승객들을 헤집고 나가면서 “별꼴이야” 한마디를 쏘아붙이고 서둘러 내렸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이하여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이제는 의식도 선진국 국민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열차가 달리는 동안 많은 승객들이 타고 내렸다. 여느 때처럼.

글=오병훈(수필가), 삽화=전진이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