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백설공주의 죄



법을 가르치는 사회교육과 선생님이 재미있는 페이퍼를 보여주었다. 동화 속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점을 찾아오라는 과제를 냈더니 이런 글들이 나왔다면서. 내가 받은 것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백설공주’ 두 편에 대한 분석이었다. 지치고 우울했던 수요일 밤, 이 어린 재판관들이 내 기운을 단박에 북돋아 주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이야기들이 알고 보면 범법투성이라고 지적하는 그들의 통통 튀는 목소리가 귓전에서 날아다니는 듯했다.

백설공주의 계모가 살인교사와 살인미수죄를 저질렀다는 판결이야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백설공주는 주거침입 죄인이란다. 따라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는 형사책임’을 져야 한단다. 죽은 공주를 매장하지 않은 난장이들은 사체유기죄, 키스한 왕자는 사체오욕죄를 받는다. 이웃나라 왕비를 불에 달군 쇠구두로 고문한 끝에 죽인 왕자는 두 나라 사이에 심각한 갈등을 유발한 거다. ‘국제법적 요소 중 자국민 보호책임에 위배되는 행위’라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을 배경으로 했지만 대한민국 법을 적용한다고 가정하여 리포트를 작성함을 밝힌다’는 단서를 단 학생은 유바바라는 인물이 저지른 법 위반 사항을 끝없이 나열한다. 민법 제5조, 근로기준법 제4조, 제64조, 제67조, 제114조,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35조…. 존속협박과 감금, 사기, 살인미수, 기물파손의 죄도 묻는다.

아이들 보는 동화가 범죄로 점철돼 있다고 소스라칠 일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인간의 깊은 속마음, 인생의 어두운 뒷면을 번개처럼 번쩍 비춰줄 수 있다. 살면서 늘 맞닥뜨리는 어려움, 두려움, 이해할 수 없음. 동화 속에서 그것들은 무시무시하게 다가오지만 그만큼 매혹적으로 해결된다. 죄인이 처벌받기도 하지만,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도 한다. 얼핏 불공정해 보인다. 하지만 공정하게만 하자고 들면 동화도, 마법도, 은혜도, 감사도, 아름다움도 없다. 법 전공 학생들의 리포트가 그걸 다시 확인시켜 준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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