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버블인가 아닌가 다시 떠오른 ‘2008’



주요국 양적완화 정책 쏟아내 경제 회복
뉴욕 증시 2000년 이후 최장기간 상승 랠리
“시가총액 대규모 증발 가능성 있다” 경고
글로벌 자산시장 버블 붕괴 우려 목소리


세계 금융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터널을 빠져나와 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올해 글로벌 주요국 증시는 사상 최고가 기록을 쏟아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집계에 따르면 미국 나스닥지수는 올해 69차례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코스피지수도 35차례 최고가를 경신했다.

숨죽이고 있었던 버블(거품) 경계론도 점점 고개를 들고 있다. 그간 주요국이 경쟁적으로 뿌린 돈(양적완화)은 글로벌 경제 회복에 도움을 줬다. 하지만 자산시장의 거품이 커졌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미국 예일대 로버트 실러 교수는 지난 7월 “미국 뉴욕 증시에 거품이 잔뜩 끼었다. 시가총액의 대규모 증발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2000년 ‘닷컴버블’ 이후 증시가 어느 때보다 고평가돼 있다는 진단이다. 뉴욕 증시는 1987년부터 2000년까지 이어진 랠리 이후 최장기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증시 상승세가 내년 꺾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뱅가드그룹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증시의 1년 수익률이 -10%로 내려갈 확률이 내년에 70%로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확률은 1960년대 이후 40%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글로벌 증시의 상승세가 꺾이면 ‘외풍’에 약한 한국 증시도 영향을 받는다. 물론 세계 경제가 완만히 성장하면서 물가 상승은 낮은 ‘골디락스’에 돌입할 것이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미국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현재 뉴욕 증시의 강세장은 ‘이성적 과열’”이라며 “현재의 주식가치가 과도한 측면은 있지만 기업 수익을 감안하면 비이성적인 상황은 아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코스피지수나 코스닥지수는 저평가돼 있어 수출이 뒷받침되면 랠리를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글로벌 증시의 하락 징후를 예민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IBK투자증권 이종우 센터장은 29일 “미국 증시가 약 9년 동안 오른 점을 감안하면 버블 얘기가 충분히 나올 만하다”며 “한국 증시도 내년 조정을 거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건국대 오정근 특임교수는 “당장은 글로벌 주식시장을 버블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이 상태로 놔두면 버블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버블의 위험성은 무엇보다 버블 붕괴가 특별한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데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현욱 거시경제연구부장은 “버블이라는 것은 사실 터져봐야 알 수 있다. 사전에 거품인지 알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모든 사람이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보면서 시장에 뛰어들 때 거품이 터졌다”며 “버블은 멈추게 할 수도, 막을 수도 없고 언제 터질지도 예측이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 파동은 자본주의 역사상 최초의 버블로 꼽힌다. 예측하기 어려운 버블이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네덜란드는 경제 호황을 누렸다. 희귀한 튤립은 부의 척도로 간주됐다. 튤립 알뿌리 확보 경쟁이 벌어졌다. 주식 투자자들은 앞 다퉈 튤립 시장에 뛰어들었다. ‘황제 튤립’ 알뿌리 하나 가격은 암스테르담 시내의 집 한 채 값보다 비싸졌다. 1636년에는 한 달 사이 튤립 가격이 2600% 올랐다. 튤립의 적정 가격은 이미 투자자들의 머릿속을 떠나 있었다. 폭탄 돌리기의 끝은 비극이었다. 시장에서 갑자기 튤립 구매자가 사라졌다. 수요가 사라진 정확한 이유조차 알기 어려웠다. 튤립을 구매해둔 업자들은 앞 다퉈 낮은 가격에 내놨다. 1637년 2월에만 튤립 가격이 100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올 들어 10배 급등한 비트코인을 두고 튤립 버블과 닮았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버블의 붕괴는 장기간의 경제 침체를 가져오기도 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에서 미국의 압력에 일본 엔화 가치를 올렸다(평가절상). 일본 정부는 이를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대응했고, 돈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1989년 말 3만8915포인트까지 치솟았다. 최근 지수는 21년 만에 최고치를 넘어섰지만 아직 2만2400포인트로 과거 버블에 크게 못 미친다. 일본은 뒤늦게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적기 대응에 실패했다. 갑작스러운 긴축은 버블 붕괴로 이어졌고,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됐다.

일본의 버블 붕괴에서 볼 수 있듯 버블은 ‘유동성 파티’에 선제 대응하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과도한 부채 팽창도 버블의 원인이 된다. 최근의 버블 붕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2007년 미국 주택시장의 버블이 꺼지면서 불거진 사건이다. 미국의 주택 가격은 1990년대 내내 상승했다. 2001년부터 연준의 저금리 정책으로 모기지 대출금리가 하락했다.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주택자금 대출을 해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한다. 하지만 연준이 2004년 6월부터 2년간 금리를 인상하자 모기지론이 줄면서 주택 수요가 감소했다. 수요가 줄자 주택 가격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기지론과 관련된 파생상품에 투자한 금융회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급기야 2008년 9월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신청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 금융시장에 재앙이었다. 미국 등 주요국들은 경쟁적으로 금리를 내리는 제로금리 정책으로 시장에 돈을 뿌렸다. 한국도 기준금리를 낮추거나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폈다. 연세대 김정식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주식시장의 랠리는 새로운 기술 진보나 생산성이 높아진 것에 기인하는 게 아니라 유동성이 많이 풀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주요국은 서서히 긴축에 들어가고 있다. 문재인정부도 최근 부동산 대책을 잇따라 발표하며 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한국은행도 30일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기준금리 인상에도 한국 주식시장 등은 세계 경제 호황에 기대 랠리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전망도 많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야 할 시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려대 경제학과 이종화 교수는 “현재 자산시장이 버블이냐 아니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서도 “지금 상황에서 예방 조치를 하지 않고 방관하는 것보다는 조심스럽게 통화정책 등의 정상화를 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산을 다변화하고, 대출 등을 이용한 레버리지 투자는 자제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글=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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