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병훈] 모과



잡지사 문을 들어서는데 향긋한 과일 냄새가 내게로 와 포근히 안겼다. 남창으로 새어드는 한 가닥 햇살이 작은 소쿠리의 모과를 비추고 있었다. 실내를 가득 채운 농익은 모과향, 확실히 모과는 눈으로 먹는 과일이다. 크기는 다른 어떤 과일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푸짐하지만 시고 껍질이 단단해서 먹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모과차나 모과청으로 가공하여 향기와 맛을 취할 뿐이다. 나무에서 달리는 참외라 하여 목과(木瓜)라 한 것을 우리말로 모과라 했다.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다 시킨다’는 말이 있다. 못생겼고 실속이 없는 과일이라는 뜻일 게다.

재래종 모과는 벌레가 잘 꾀고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해 울퉁불퉁한 것이 많았다. 요즈음 개량종 모과는 미끈하고 잘 생겼지만 저장성이 약하다. 가을에 재래종 모과를 따서 무구덩이 같은 움에 저장했다가 이듬해 설날쯤 꺼내 먹으면 과육이 흐물흐물해져 새콤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겨우내 시래기만 먹다가 저장한 모과를 꺼내 먹으면 양질의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었으니 바로 봄의 미각이다. 우리의 잃었던 맛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재래종 모과를 널리 심어야 한다. 모과를 만지면 끈적끈적한 즙액이 묻어나는데 이것을 물에 씻으면 향기가 사라진다. 맨손으로 만지지 말고 반드시 면장갑을 끼고 다뤄야 한다. 향기가 사라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손을 대면 쉽게 썩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모과는 향을 취하기 위해 실내에 두었다. 책가도(冊架圖)에서도 모과 열매가 놓여 있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선비들도 가을이면 서재에 모과를 두어 향기를 즐겼으리라. 한때 모과나무를 고급 정원수로 선호하면서 시골 밭둑의 큰 모과나무가 도시로 팔려나갔다. 그 모과나무가 뿌리도 내리기 전에 여기저기 옮겨 심다보면 결국 말라죽게 된다. 쌀쌀한 날씨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때. 잡지사에서 얻어온 모과를 본 아내가 설탕에 절여 모과차를 만들자고 했지만 나는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작은 나무 함지박에 담아 서가에 두어 쾌쾌한 고서 냄새가 조금이나마 사라지길 바라며.

오병훈(수필가),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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