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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아 곤차로바 ‘더 하베스트’


이맘때만 되면 “가을을 타는지 우울해요”라는 사람이 늘어난다. 동절기로 접어들면서 일조량이 줄면 뇌에서 세로토닌의 활성도도 낮아져 울적한 기분에 쉽게 휩싸일 수 있다. 그런데 감정이 요동치는 게 꼭 일조량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가을만 되면 울적해진다는 사람들은 현재에 몰입하기보다 과거의 상념에 젖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데 주의를 빼앗기는 경향이 크다. 눈앞에 펼쳐진 이 순간을 음미하지 않고 “아, 한 해가 다 갔는데 그동안 내가 이룬 건 하나도 없어”라며 후회에 빠지고 “내년에 더 힘들면 어쩌지” 하고 미리 염려하니 우울해질 수밖에.

이 가을에 쓸쓸하다 못해 울적해서 미치겠다면 ‘나는 시간이 흐르고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하고 자기 마음을 살펴봐야 한다. 올해도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내 손에 남은 건 없었다며 허무함에 사로잡혀 있기보다 비록 현실은 팍팍해도 ‘시간이 흘러 고통은 씻겨나가고 내년에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라며 기대와 희망을 자신에게 불어넣어야 한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니까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인문서적만 들추며 실내에 콕 박혀 있거나, 해가 짧아지고 쌀쌀해졌다며 평소 하던 운동을 그만둬 버리면 저조한 기분에 휩싸이기 쉬워진다. 우리 뇌는 몸의 움직임을 근거로 감정을 만들어내는데 ‘아, 이 사람은 움츠러들어 있네. 우울한가봐’라며 몸에 맞춰 뇌도 덩달아 움츠러든다.

“가을은 두 번째 여름이다”라는 알베르 카뮈의 말이 딱 맞는다.

가을도 여름 못지않게 야외에서 즐겨야 하는 계절이다. 알록달록한 꽃으로 변한 나뭇잎들이 눈을 호강시켜주니 좋고 산뜻한 바람 맞으며 사랑하는 이와 손잡고 걸어도 좋다.

이토록 파란 하늘은 가을에만 볼 수 있지 않는가. 어디선가 낙엽 태우는 냄새가 날 것 같고,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에 취하기에도 이 계절은 알맞다. 미뢰를 자극하는 음식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을 온몸으로 즐길 수 있다면 “가을을 탄다”며 울적한 기분에 빠질 리도 없을 것이다.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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