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부러진 오른손



과학 글을 쓰는 동료작가 하나가 지난겨울 오른 손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아픈 건 말도 못하고, 깁스생활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글도 못 쓰고, 운전도 못 하고, 화장실 뒤처리도 너무 힘들고… 깁스 푼 뒤에도 기나긴 재활치료. 그런데 심각한 재앙인 상황을 이 친구는 신묘하게 뒤집어버렸다. 왼손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원래 그림을 잘 그려 자기 글에 직접 일러스트를 하던 터였다. 그는 하루에 한 가지씩 동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단순히 왼손에 일을 시키면 어떻게 될까 실험정신이었지만, 그림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덧붙인 해설 글도 너무 재미있어서 이게 급기야 책으로 묶여 나오고 말았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친구라 ‘펭귄도 사실은 롱다리다!’라는 제목 위에 ‘오른팔이 부러져서 왼손으로 쓰고 그린 과학 에세이’라는 도발적 고백도 올려놓았다. 외뿔고래 설명에서는 “인간들은 이 엄니를 무기로 여기는 모양인데, 너 같으면 2m나 되는 막대기를 입에 물고 휘두르고 싶겠냐? 물속에서!”라며 독자를 다그친다. “아녜요, 잘못했어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백조가 물에 떠 있으려면 발을 쉬지 않고 허우적대야 한다는 소리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면서 ‘누가 그런 소리 했어?’ 덧붙이는데, 눈을 부라리는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안데르센이 비슷한 말을 ‘미운 오리 새끼’에서 하긴 했지만, 대신 해명을 해주자면, 떠 있으려고 그런 게 아니라 물이 얼어붙지 않게 하려고 그랬다는 거다.

과학자답게 그는 오른손으로 그릴 때와 왼손으로 그릴 때의 차이를 분석해 놓았다. 뇌와 근육의 움직임, 시각의 변화 등등. 그러면서 이런 걸 배운 것 같다. 오른손과 왼손은 완전히 다른 일을 한다, 그러면서 서로 보완한다, 그것이 내가 보는 세계를 풍요롭게 하고 나를 표현하는 방식을 다양하게 해준다. 부러진 오른손 덕분에 그의 작가세계가 더 넓어진 듯하다. 전화위복인 셈이다. 여기서 내가 배운 것은, 나는 왼손으로 그림 그려 책 낼 가망은 아예 없으니, 오른손을 부러뜨리면 절대 안 된다는 점이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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