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발톱 감춘 시진핑, 트럼프 달래며 新국제질서 시동





中 승리로 끝난 G2 외교

시진핑, 시종 우호적 행보
주변국 ‘親중국’ 관계 조성
아시아 주도권 확보 집중

트럼프는 보호무역 주장
자국 이기 집착하다 고립
APEC서도 ‘외톨이’ 전락


‘뜨는 시진핑, 지는 트럼프.’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중·일 3개국 방문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행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는 대체로 ‘중국의 승리’라는 평가가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무역불균형 해소와 자국 우선주의에 집착했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에 집중하고 포용하는 행보를 보였다. 특히 19차 공산당대회를 통해 절대권력을 손에 쥔 시 주석이 ‘신형 대국관계’ 외교구상을 본격 실행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베트남을 국빈방문 중인 시 주석은 12일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만나 해양 자원개발 등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신화통신이 13일 보도했다. 양 정상은 ‘포괄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증진하고,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전략) 구상을 비롯한 각종 무역 관계에서도 교류를 늘리기로 했다.

양측은 최대 현안인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은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시 주석은 “양국이 계속 좋은 이웃, 좋은 친구가 돼야 한다”며 자세를 낮췄다. 이는 갈등은 ‘봉인’하고 교류를 트는 한국의 사드(THAAD)식 해법을 차용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시 주석의 로키(low key·낮은 수위) 외교 행보는 주변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조성해 ‘친중국’ 우군을 확보함으로써 아시아에서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런 분위기는 시 주석의 집권 2기 출발 때부터 감지됐다. 한국과의 사드 합의를 도출한 게 신호탄이었다. 시 주석은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도 “우호적인 중·한 관계는 역사와 시대적인 대세에 부합한다”고 선언했다.

시 주석은 일본에도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였다. 인민일보는 베트남에서 열린 시 주석과 아베 신조 총리의 정상회담을 전하면서 두 사람이 양국 국기를 배경으로 악수하는 사진을 12일자에 게재했다. 이는 과거 인민일보가 양국 국기가 없는 사진을 게재했던 것과 비교된다고 일본 지지통신은 분석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을 주창하다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다. 특히 방중 기간 시 주석에게 무역불균형 시정을 요구했다가 중국이 280조원이 넘는 투자·구매 보따리를 풀어놓자 머쓱하게 물러섰다. 초일류 강대국인 미국이 아직 군사력과 경제력 등 국력에서 한참 못 미치는 중국에 애걸해서 떡고물을 받아내는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280조원 계약의 상당수가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MOU) 수준이란 지적도 나온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금성 ‘황제 연회’와 겉만 화려한 선물을 안겨주며 전혀 손해 없는 성과를 거둔 셈이 됐다. 미국 언론이 ‘트럼프의 저자세 외교’에 뭇매를 때린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다자무역 체제 강화를 위한 APEC 회의에서 다자무역을 ‘불공정 협정’이라고 주장해 ‘외톨이’를 자초했다. 시 주석은 “개방은 발전을 가져오고, 문을 닫는 이들은 필히 뒤처질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비판했다.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가 이번 아시아 순방에선 ‘중국을 더욱 위대하게’로 만들었다”는 서방 언론의 평가가 양 정상의 처지를 대변해준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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