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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 “여성영화 위한 힘겨운 노력… 우리의 의무” [인터뷰]

영화 ‘미옥’의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김혜수. 여성 영화 제작이 힘든 현실에 대해 그는 “관객은 이미 우리의 문제의식을 알고 있고, 진심으로 응원하고 박수칠 준비가 돼있다. 우리는 그것을 해내야 한다. 그럴 의무가 있다”고 했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 강영호 작가 제공
 
영화 ‘미옥’의 한 장면.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제공




형사와 깡패가 나오는 한국형 누아르는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다. 영화깨나 찍었다는 남자배우 중 ‘조폭’ 역할 한번 안 해본 이가 없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 정도니까. 그런 와중에 등장한 여성 누아르. 게다가 김혜수(47)가 주연으로 나선 작품. ‘미옥’(감독 이안규)을 향한 기대감은 그렇게 치솟았다.

개봉 전날인 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수는 “완성본을 보고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고 털어놨다. “여성 누아르니 뭐니 하지만, 촬영에 들어갈 땐 부담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개봉할 때가 되니 (부담이) 확 밀려오네요(웃음).”

김혜수는 “시나리오 봤을 때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인물간 관계를 밀도 있게 그리면서 그들이 서서히 어긋나다 결국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간다”면서 “평소 누아르라는 장르가 주는 정서를 좋아하기도 했다. ‘피의 미학’이라고도 하지 않나. 비주얼적인 강렬함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씁쓸하게 휘몰아치는 감정이 있다”고 말했다.

‘미옥’이라는 창녀 시절 이름을 버리고 범죄조직에 들어가 조직을 이끈 중간보스 나현정(김혜수)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평범한 삶을 꿈꾸게 된 그가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던 중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맞닥뜨린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낸다. 거창하게 펼쳐낸 이야기를 ‘모성애’라는 진부한 설정으로 매듭짓는 안일함을 보여주고 만 것이다.

모성이라는 장치가 강조된 데 대해 김혜수는 “난 사실 그렇게 준비하고 연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편집 과정에서 어느 정도 변동이 있었다는 얘기. “미옥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좇는 인물이었어요. 그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 다 버리고 떠나는 거였죠. 모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그것과는 다른 결을 생각했어요.”

타이틀롤인 미옥보다 그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조직의 행동대장 상훈(이선균)의 시점이 부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단순히 (미옥 분량이) 빠져서가 아니라 감정이 충분히 쌓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는 미옥이란 인물을 어떻게 담아내느냐가 관건이었어요. 내밀하게 쌓여 폭발할 것 같은 그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게 중요했죠.”

이번 작품에서 김혜수는 여러모로 파격을 보여줬다. 은발의 반삭 헤어스타일부터 처음 도전한 정통 액션까지 그의 치열한 노력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적잖이 고생스러웠겠다는 걱정의 말에 그는 “알고 한 거니까 괜찮았다”며 생긋 웃었다. “배우니까 그런 거 해보죠 뭐. 처음 해보는 건 뭐든 신선하잖아요.”

김혜수는 “작품의 성패를 떠나 ‘미옥’은 유의미한 도전이자 반가운 시도였다”고 얘기했다. “그동안 여성의 관점에서 출발한 영화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에요. ‘피도 눈물도 없이’부터 ‘용순’ ‘악녀’까지 여러 영화들이 힘겹게 만들어져 왔죠. 분명 현실적인 벽이 있어요. 그럼에도 이런 노력이 계속돼서 조금씩이나마 더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어린 시절에는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영화계 현실을 당연하게 여겼단다. 늘 그래왔으니까. 김혜수는 “여성과 남성을 나누어 얘기하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아직까지 정비례하지 않는 건 사실”이라며 “우리 업계에서 좀 더 자연스럽고 마땅하게 여배우가 설 자리를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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