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사람이 답이다] 英 ‘코드클럽’, 아이들에 다양한 SW 활용법 무료 교육

영국 이셔의 크랜미어 초등학교에서 소프트웨어(SW) 수업에 참가한 제시카 허클양이 리처드 해일러씨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파이손’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방과후 프로그램인 이 수업은 비영리 재단인 코드클럽이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서윤경 기자



 
클레어 서트클리프


영국은 18세기 중반 동력으로 증기기관을 돌리면서 ‘세계의 공장’이 됐다. 제1차 산업혁명이었다. 독일은 2012년 철강 자동차 조선 화학 등 제조업에 인공지능(AI)을 융합하고 서비스화해 한 단계 도약하는 ‘인더스트리 4.0’을 선언했다. 4차 산업혁명의 출발이었다.

두 나라가 현재까지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요국으로 꼽힐 수 있는 것은 변화의 조류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흐름을 이끌었기에 가능했다. 두 나라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런던에서 기차로 20여분 떨어진 이셔 지역의 크랜미어 초등학교. 지난달 9일 10여명의 학생이 방과후 수업으로 코드클럽에서 진행하고 있는 소프트웨어(SW)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로 들어왔다. 쉴 새 없이 재잘대는 모습이 한국의 또래 학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

잠시 후 낯선 장면이 연출됐다. 자원봉사자이자 이 학교 학부모인 리처드 해일러씨가 소형컴퓨터 파이(Pi) 활용 실력을 겨루는 ‘파이워즈’ 대회를 설명하면서 도전 과제를 차례로 제시했다. “네모난 방에 로봇이 있어요. 이 로봇을 각 코너에 한 번씩 가도록 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제시카 허클(11)양이 “각 코너를 색으로 지정하고 카메라가 인식하게 하면 어떨까요”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동갑내기 플린 싱클레어군은 “카메라가 정확한 지점을 인식하는 데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허클은 SW 수업을 이제 막 듣기 시작했고 싱클레어는 2년째 이 교육을 받았다. 싱클레어는 지난해 같은 대회에 참가해 최연소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초보자건 숙련자건 너나할 것 없이 각자의 생각을 얘기했고, 선생님은 모두 들었다. 토론이 끝나자 해일러씨가 “다들 근사한 아이디어”라고 말한 뒤 “그런데 이렇게 풀어보는 건 어떨까”라며 해답을 제시했다. 그리고 또 다른 과제를 내놨다. 바퀴를 굴려 수레를 이동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컴퓨터 앞으로 간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싱클레어는 조원과 논의 끝에 역할을 분담했다. 자신이 파이손으로 바퀴를 움직이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이 다른 친구는 바퀴를 3D 프린터로 출력하기 위해 그래픽을 그렸다.

허클은 해일러씨가 칠판에 적은 명령어를 입력했지만 바퀴가 돌지 않자 고민에 빠졌다. 다른 곳에 있던 친구가 곁으로 와 오류를 찾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바퀴가 돌기 시작했다.

코드클럽은 2012년 영국에 설립된 자선 단체다. SW를 사용해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방법을 무료로 아이들에게 알려주자는 게 목표다. 2015년엔 ‘라스베리파이 파운데이션’과 합병해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화했다. 라스베리파이는 신용카드 크기의 초소형인 데다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만 연결하면 PC가 돼 비용도 저렴하다. 응용 분야도 다양하다. 사우샘프톤 대학교는 GSM·GPRS 모듈과 파이손으로 스마트폰을 만들었다. 4000달러 정도면 충분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다가오면서 코드클럽도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현재 100여 개국에 1000개 이상의 클럽을 두고 있다. 지난 6월 서울에서도 코드클럽이 출범했다. 시작한 지 채 1년도 안 됐지만 이미 전국 초·중등학교를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영국 정부도 SW 교육에 적극적이다. 지난 7월엔 마이클 고브 교육부장관이 5∼14세 학생에게 적용되는 새로운 교과과정을 발표했다.

코드클럽 국제 프로그램 매니저인 제임스 애슬럿씨는 “SW 교육을 확산하려면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공계 대학생이 그 역할을 할 것”이라며 “학생들은 자신이 배운 것을 알려주면서 실력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제임스의 주문을 이미 실행하고 있는 곳이 있다. 독일이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보훔공립대학교는 2008년부터 화학 프로젝트인 ‘KEMIE’를 진행하고 있다. KEMIE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경험하는 화학’이라는 문장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보훔대학의 화학교육학과, 의학과 교수진과 학생이 팀을 구성해 연구와 실험에 도움을 준다.

교육 대상은 초등학교 3∼5학년 학생과 부모다. 매번 바뀌는 주제엔 ‘화학은 어렵다’는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감자튀김의 생분해, 콜라가 갖고 있는 펀치의 위력 등을 연구하고 실험한다. 보훔대학은 KEMIE를 통해 아이들이 화학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길 원한다. 과학적 사고를 키우는 것도 포함된다. KEMIE는 독일 전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민트(MINT) 프로젝트의 또 다른 형태다.

이 학교 화학과에 재학 중인 최항석씨는 “국가에서 진행하는 민트 프로젝트가 있고 각 학교나 기관에선 민트와 연계한 개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트는 수학(Mathematik), 정보통신(Informatik), 자연과학(Naturwissenschaften), 기술(Technik)의 앞 글자를 땄다. STEM(과학·기술·공학·수학)과 유사하다. 민트 프로젝트는 2008년 기업가들이 독일 사회 전체에 이공계 전문인력 부족의 심각성을 알리고 민트 과목의 교육을 강화해 이공계를 현실 세계로 끌어들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정부와 지자체, 학교와 연계해 프로그램의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보훔대학과 같은 주에 있는 빌레펠트 대학은 조기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전문교사를 양성하고 있다. 이 대학에서 근무 중인 케린 리버츠, 안네 카트린 바르체카, 닐스 코르데스 박사는 3000여명의 유치원 교사에게 연수를 실시했고, 전문교재와 실습도구를 제작해 유치원에 배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500여개 초등학교에 연수 받은 교사 2명이 파견돼 14일 동안 52개의 과학실험을 시행하는 ‘미니페노메나’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 재학생을 위한 프로그램 ‘ZLL’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이공계 학생들에게 역량에 맞는 연구 과제를 알려주고 기업과 연결해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 독일 정부도 대학,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이공계 교육과 전문가 영입에 앞장서고 있다. 경제 및 에너지 연방교육부(BMWi)는 민트 분야 전문가의 수요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3월엔 민트 교육을 위한 기술 평가위원회를 구성했다.

특히 BMWi는 전 세계 4차 산업혁명 관련 전문가들을 독일로 영입하기 위해 비자 절차, 구직 방법 등을 알려주는 포털 ‘Make it in Germany’를 운영하고 있다.

■'코드클럽' 설립 클레어 서트클리프 "인터넷으로 SW 독학하면서 교육 필요성 절감"

코드클럽을 만든 클레어 서트클리프(사진)씨는 5년 전까지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원래 직업은 광고업계 디자이너였다.

"어느 날 업무에 필요해 인터넷으로 소프트웨어(SW)를 독학하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SW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죠. 누구보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지난달 7일 영국 케임브리지의 '파이(Pi)타워'에 있는 코드클럽 사무실에서 만난 그녀는 코드클럽의 시작을 이렇게 설명했다. 2012년 세워진 코드클럽은 이후 영국에서 컴퓨터 코딩교육이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코드클럽은 설립 취지에 맞게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SW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커리큘럼도 탄탄하다. 스크래치라는 기초 프로그램으로 SW에 접근하면 심화 단계에선 파이손 같은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수준까지 발전시킨다.

그가 고민하는 것은 모든 아이들에게 동일한 교육 기회를 어떻게 제공하느냐는 것이다. 나라마다 교육 수준이 다르고 제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이미 SW 관련 사교육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얘기하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부 국가의 SW 교육에 드는 비용이 비싼 것으로 알고 있어요. 코드클럽은 공짜예요. 저희가 좀 더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려고 해요.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것도 필요해요. 학교,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기업들이 저희와 함께 하면 좋죠."

SW 교육의 방향도 설명했다. 개인별 선호가 다르기 때문에 SW가 중요하다고 억지로 교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라스베리파이를 가져왔다.

"전문가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에요. 여기 35달러짜리 반도체에 인문학 감성을 넣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저희 목표예요." 실제 코드클럽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수업을 듣고 새로운 진로를 찾은 경우도 있었다. 서트클리프씨는 "열여섯 살이던 아이가 코드클럽을 찾았는데 그땐 SW에 무지했다"면서 "그런데 자신의 적성을 발견해 관련 대학에 들어갔고 지금은 게임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임브리지·이셔(영국), 보훔·빌레펠트(독일)=서윤경 기자,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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