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그뤠잇한 스튜핏



항공권 검색 앱 중의 하나인 ‘스카이스캐너’는 멋진 기능을 갖고 있다. 출발지를 ‘대한민국’으로, 도착지를 ‘어디나(everywhere)’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전국 모든 공항에서 어디론가 향하는 비행편이 쭉 뜬다. ‘가장 저렴한 달’을 지정하는 항목도 유용하다. 나는 수시로 이런 과정을 즐기면서 이걸 ‘손가락 관절운동’이라고 부른다. 이 운동의 묘미는 도착지를 ‘어디나’로 두는 데에 있다.

C는 그 손가락 관절운동을 부추기는 친구다. C와의 여행은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내가 “나 이제 긴축재정이야”라고 말하면, C가 “나도 그래”라고 동의하고, 일단 여행을 좀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를 나누게 된다. 둘 중 하나가 “완전 땡처리, 이런 거면 모를까”라고 말끝을 흐리면, “봤는데! 오키나와 왕복이 7만원이던데?”란 말이 따라가는 것이다.

‘긴축재정⇒저렴한 여행⇒여행’으로 흐르는 줄거리가 좀 ‘스튜핏’인 것 같지만, 저렴한 항공권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자유로운 일정이야말로 우리의 불안정한 노동 환경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점이란 생각을 하면 ‘그뤠잇한 스튜핏’ 정도로도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그뤠잇한 스튜핏’이 어떤 것인지 설파할 수 있지만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니다. 가끔은 회피나 둔갑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우리는 최근에도 항공권 하나를 결제했는데, C가 “엄마한테 여행 간다고 했어”라고 말했을 때 나는 “A나 B랑 간다고 해!”라고 했다. “애도 안 낳고”로 시작되는 줄거리가 예상돼서 말이다. C는 이미 동행이 나란 걸 밝혔고, 예상대로 등장한 잔소리도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것도 있었다.

“기껏 비행기 타고 가서 왜 2박3일 있냐고 그러시던데?” 듣고 보니 그랬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여행을 아예 정례화하는 게 좋겠어.” 내가 ‘아예 정례화’가 뭐냐고 묻자, C는 내년부터 우리 스케줄을 좀 통일하자고 했다. ‘그뤠잇한 스튜핏의 정례화’라니. 이건 진짜 그뤠잇인가, 아니면 스튜핏인가.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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