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무화과나무



자그만 화분을 선물 받았다. 큰 가지 하나와 거기서 비어져 나온 작은 가지 하나로 단출한 무화과나무였다. 작은 가지가 별 변화를 안 보이는 동안 큰 가지는 무럭무럭 자랐다. 저러다 혹시 화분이 넘어지기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 큰 가지가 성장을 딱 멈췄다. 무성하던 잎들도 차례차례 밑에서부터 떨어져 나갔다. 대신 작은 가지에서 또 작은 가지들이 하나둘 솟아나왔다. 이파리도 속속 피어나왔다. 작은 가지와 잎들이 보기 좋게 기세를 떨치는 동안 큰 가지에는 맨 위의 작은 잎 하나만 남았다. 다 죽은 모양이다. 저걸 잘라내야 하나. 조금만 더 두고 보다가 전문가에게 물어봐야겠다.

두고 본 것이 다행이었다. 큰 가지는 죽은 게 아니었다. 작은 가지에 열매가 세 개 맺히고 나자 큰 가지에 다시 이파리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아, 그러니까 큰 가지는 작은 가지들을 키우기 위해서 스스로 숨을 죽인 것이다. 그렇게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마치 학교를 단념하고 취직해서 동생들 뒷바라지한 가난한 집안의 큰언니처럼. 동생들이 제대로 일어서자 그제야 야간대학에 등록한 큰언니처럼. 작은 화분에 심긴 삐뚜름한 작은 나무 하나도 가만히 보면 거대한 자연이다. 자기를 낮추고 남을 살리면서 함께 성장하고 세상의 균형을 잡는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책이나 화면에도 있지만, 화분에도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우리를 가르친다.

이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다. 친구인 그림책 작가 한성옥에게 일어난 일이다. 칼럼 쓸 거리를 고민하자 그녀가 즉석에서 들려주었고, 내가 즉석에서 받아 적은 것이다. 내게도 이런 식으로 곁가지들이 생긴다. 소재가 떨어지면 학생이, 친구가, 떠돌던 개가, 무심코 집어 든 책이, 뛰어다니던 꼬맹이들이 할 말을 흘려보내준다. 내가 할 일은, 내 안을 헤집던 눈길을 밖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들의 말과 나의 눈이 만나서 새 가지 같고 이파리 같은, 희망컨대 열매 같은 글이 맺힐 수 있다. 살며 사랑하며. 이 칼럼의 캐치프레이즈가 이렇게 되새겨진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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