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페셜] 정치판에 간 스포츠 스타들… 라이베리아선 ‘대통령’ 나올 듯



아프리카 최고의 축구선수로 불렸던 조지 웨아(51)가 라이베리아 대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치판에 뛰어든 스포츠 스타는 웨아 말고도 많다. 옛날의 전장(戰場)이 지금의 경기장이고 중요한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스타플레이어는 곧 개선장군이다. 국가적 영웅으로 떠오른 이에게 정치권의 러브콜이 쏟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선수 시절 플레이가 영웅적이었다고 정치인이 돼서도 모두가 훌륭한 정책을 펴는 것은 아니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눈에 띄는 스포츠 스타 출신 정치인 9명을 꼽아봤다.

조지 웨아(라이베리아·축구)

웨아는 지난달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지만 득표수가 과반에 못 미쳐 오는 7일 현 부통령 조셉 보아카이(72)와 결선투표를 치른다. 1차 투표 때 1, 2위 득표율 격차가 10% 포인트 가까이 났기 때문에 결선에서도 웨아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

웨아는 축구선수로 199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AS모나코, 파리생제르맹, AC밀란 등 유럽 명문 구단을 두루 거쳤다. 1995년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처음 세계 최고 축구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2003년 은퇴하고 정치인으로 변신해 2005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엘런 존슨 설리프(78) 현 대통령에게 패했다. 2011년에는 대선 후보 윈스턴 터브먼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나섰지만 설리프-보아카이 콤비에게 또 다시 졌다.

이번엔 웨아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지만 독재자와 손잡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인접국 시에라리온 내전에 개입한 전쟁범죄로 국제형사재판소로부터 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찰스 테일러 전 대통령의 전 부인 주얼 하워드 테일러를 러닝메이트로 삼았기 때문이다. 주얼은 테일러 전 대통령과 이혼한 사이지만 지역구를 물려받아 전 남편을 사면해 달라고 부르짖는 인물이다. 웨아는 테일러 전 대통령과의 연계를 부인했지만 라이베리아에 여전히 남아 있는 독재자에 대한 향수를 득표에 활용하려고 독재자의 전 부인을 부통령 후보로 세운 것으로 보인다.

매니 파키아오(필리핀·복싱)

파키아오(39)는 필리핀의 ‘국민복서’다. 프로복싱 사상 최초로 8체급을 석권했고 지난해 ESPN이 선정한 ‘지난 25년간 체급불문 최고의 복서’ 2위에 올랐다. 1위는 2015년 파키아오에게 판정승을 거둔 플로이드 메이웨더(40·미국)다.

파키아오는 현역 선수이자 상원의원이다. 지난 7월 무명의 호주 선수에게 충격의 판정패를 당했지만 연내 재대결할 계획이다. 사업가와 영화배우도 겸업했던 파키아오는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2007년 정계에 뛰어들었다. 첫 도전은 실패했지만 2010, 2013년 하원의원에 연거푸 당선됐고 지난해 상원의원이 됐다.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 파키아오는 주먹끼리 통하듯 서로가 팬인 사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파키아오가 자신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수차례 말했다. 파키아오도 초(超)사법적 ‘마약과의 전쟁’을 비롯한 두테르테 대통령의 문제 많은 정책들에 대해 강력한 지지 입장을 밝혔다.

호마리우 지 소우자 파리아(브라질·축구)

호마리우(51)는 숱한 브라질 축구 영웅 중 한 명이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베베토와 함께 예술적인 플레이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2008년 브라질사회당(PSB)의 러브콜을 받고 정계에 입문했다. 2010년 높은 득표율로 하원의원이 됐고 2014년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현재 소속 정당은 중도 성향의 포데무스다.

호마리우의 다음 목표는 리우데자네이루 주지사다. 내년 주지사 선거 출마를 고민 중이다. 그는 정치를 하는 이유로 “약자 보호와 부패 축출”을 들며 반(反)부패 투사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부패집단”이라며 2014년 브라질월드컵 개최에 반대했고 이듬해엔 브라질축구협회 부패조사위원장을 맡았다.

하칸 쉬퀴르(터키·축구)

터키 축구 영웅 쉬퀴르(46)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과 맞붙은 3, 4위전에서 경기 시작 11초 만에 골을 뽑아낸 선수여서 우리 눈에 익다. 그는 ‘보스포루스(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터키의 해협)의 황소’로 불리며 간판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리다 2008년 은퇴했다.

그는 2011년 하원의원이 됐지만 지금은 반정부 인사로 찍혀 미국에서 도피생활 중이다. 강압적인 통치를 하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쉬퀴르는 지난해 7월 터키 쿠데타의 배후 세력인 재미 이슬람 학자 펫훌라흐 귈렌 쪽 인사로 지목됐다.

임란 칸(파키스탄·크리켓)

파키스탄정의운동(PTI)이라는 야당을 이끄는 칸(65)은 크리켓 영웅이었다. 야구와 비슷한 크리켓은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영국과 영국 식민지였던 나라들에선 상당히 인기 있는 스포츠다.

칸은 1992년 크리켓 월드컵에서 주장으로 팀을 이끌어 파키스탄 역사상 첫 우승을 달성, 인기가 정점이었을 때 은퇴했다.

1996년 PTI를 창당한 뒤 오랫동안 고전했으나 최근 들어 차기 총리 주자로 부상했다. 지난해 나와즈 샤리프 총리의 조세 회피 혐의가 드러났을 때 적극적으로 사퇴를 촉구한 게 주효했다. 샤리프는 지난 7월 총리직이 박탈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내년 총선에서 칸 대표가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비탈리 클리치코(우크라이나·복싱)

WBO 헤비급 챔피언을 지낸 클리치코(46)는 선수 시절 별명이 ‘철권 박사’였다. 주먹도 세고 머리도 똑똑하다는 뜻이었다. 그는 2005년부터 정계에 투신해 2013년까지 복싱과 정치를 겸업했다.

친(親)서방 성향의 클리치코는 2014년 ‘친러시아’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몰아낸 ‘유로마이단 혁명’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혔다가 철회하고 수도 키예프 시장에 당선돼 현재까지 재임 중이다.

안토니오 이노키(일본·프로레슬링)

이노키(74)는 역도산의 제자로 1960, 70년대 일본에서 프로레슬링 인기를 주도했다. 1976년 복싱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특별 매치를 벌이기도 했다. 1989년 참의원 선거에 나와 당선됐고 지금도 참의원 의원(무소속)이다. 이노키는 북한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북한통, 친북 인사로 유명하다. 그는 스승 역도산의 고향이 함경남도라는 이유로 대북 관계에 몰두하게 됐다.

서배스천 코(영국·육상)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회장인 코(61)는 중거리 육상 스타에서 정치인, 스포츠 행정가로 변신한 인물이다. 그는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84년 LA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1500m)와 은메달 2개(800m)를 따냈고 세계기록을 12차례나 갈아치웠다. 1990년 은퇴한 뒤 보수당 하원의원을 두 차례 지냈다. 1997년 낙선하고 정계를 떠났다가 2005년 런던올림픽 유치단 단장으로 투입돼 유치를 성사시켰다. 런던올림픽조직위원장도 맡아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렀다.

켄 드라이든(캐나다·아이스하키)

드라이든(70)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전설적인 골리(골키퍼) 출신이며 캐나다 집권 자유당의 중진 정치인이다. 그는 아이스하키가 최고 인기 스포츠인 캐나다에서 통산 397경기를 뛰면서 57경기만 패했고 46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았다. 워낙 철벽 수문장이어서 ‘4층 골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4년 ‘스타급 후보’로 불리며 자유당에 차출돼 하원의원을 지냈다.

글=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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