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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부작용 걱정에… 한국 여성들 ‘피임약 기피증’





정보 부족과 부작용 우려
성공률 높아도 피임약 복용 꺼려
학교 피임 교육도 반대하고
성인이 되면 교육받을 기회 줄어
사후피임약 복용은 점점 증가
선진국, 약 처방·구입비 지원해
원치 않는 임신 막고 낙태 줄여
“국내도 피임 진료·건보 지원을”


결혼 3년차인 윤모(32·여)씨는 1년 동안 복용해 오던 사전피임약을 지난달부터 끊었다. 당분간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어 피임약을 꾸준히 먹어왔는데 최근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피임약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며 "복용법만 잘 지키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부작용 이야기를 듣고 나니 불안해졌다"고 토로했다.

매달 생리통에 시달리는 김모(28·여)씨는 피임약이 생리통 완화에 좋다고 해 3개월째 복용하고 있다. 김씨는 "생리통이 너무 심해 먹고 있긴 하지만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된다"며 "인터넷을 보면 피임약을 먹고 심한 부작용을 겪었다는 사람이 많은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사전·사후 피임약은 종류만 56개에 이른다. 갈수록 다양한 피임약이 출시되고 있다. 여드름 치료, 생리주기 변경 등 용도도 여러 가지인데 제대로 된 정보 없이 피임약을 사용하는 여성이 많다.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이 여성 3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사전·사후 피임약에 대한 여성들의 기본 지식은 각각 33.2%, 44.4%에 불과했다.

피임약이 낯선 한국

한국의 피임약 사용률은 2.5%다. 대한산부인과의사협회 자료에 따르면 유럽의 피임약 복용률은 가장 낮은 이탈리아가 16.4%이고 가장 높은 벨기에가 42.1%였다.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피임약을 대부분 피임 목적이 아닌 생리주기 변경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의약품안전관리원 조사에 따르면 사전피임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는 여성 1104명 중 62.0%는 ‘생리를 미루기 위해’ 사전피임약을 복용했다고 응답했다. ‘피임을 위해서’라는 응답은 38.9%였다(복수응답).

사용률은 저조하지만 실제 피임약은 성공률이 매우 높은 피임법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협회에 따르면 가장 보편적인 피임법으로 사용되는 콘돔(남성용)의 피임성공률이 평균 75%에 그치는 반면 매일 복용하는 사전피임약은 피임성공률이 99%에 이른다. 관계 후 72시간 내에 복용해야 하는 사후(응급)피임약은 평균 85%다. 외국에서는 사전피임약이 가장 일반적인 피임법으로 쓰이고 있다. 미국은 15∼44세 여성의 17.1%가 피임약을 복용하고, 프랑스도 15∼49세 여성의 28.9%가 사전피임약을 복용한다.

피임성공률이 높은데도 피임약이 일상적인 피임법으로 정착되기 어려운 이유는 부작용 우려 때문이다. 가임기(15∼49세) 여성 3500명 중 57.7%는 ‘사전피임약 사용의향 결정 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안전성을 꼽았다. 피임효과(23.3%)보다 우선적인 고려사항이었다(중복응답).

하지만 정작 여성들이 부작용에 대한 전문 정보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다.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는 청소년들에게 피임약 교육을 하는 데 대해선 반대 목소리가 많다. 성인이 되면 성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어진다.

피임약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어도 정확히 알고 있는 여성은 절반이 채 안 됐다. 가임기 여성 중 사전·사후피임약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습득한 비율은 각각 33.2%와 44.4%에 그쳤다. 전문가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경우도 각 24.0%, 18.0%로 현저히 낮았다. 대신 주변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얻는 비율은 각각 47.0%, 40.7%였다.

계획적이지 못한 피임, 부작용 우려 키워

사후피임약은 응급 용도다. 사후피임약은 일반 피임약의 10배에 달하는 고용량 호르몬제재가 사용되기 때문에 의사 처방 없이 살 수 없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산부인과의사협회는 “응급피임약은 부정기적으로, 응급 시에만 사용해야 한다”며 “장기간 반복 복용할 경우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사후피임약을 처방받는 여성은 점점 늘고 있다. 피임약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 여성 10명 중 6명은 사후피임약을 복용했다. 2013∼2015년 전체 피임약 생산·수입액이 66억원 줄어드는 동안 사후피임약은 14억원 증가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처방된 피임약 105만7000여건 중 약 60%는 사후피임약이었다.

한 달에 2회 이상 사후피임약을 복용한 경우는 지난해에만 5388건으로 5년 새 배 정도 증가했다. 이는 계획적인 피임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고용량 호르몬제인 사후피임약 사용은 여성의 몸에 무리를 주는 만큼 부작용 우려도 크다.

피임약을 둘러싼 논쟁

국가가 계획적인 피임을 돕기도 한다. 영국 독일 스페인 영국 등 일부 선진국은 국가 차원에서 사전피임약 구입·처방 비용을 지원한다. 계획적인 피임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고, 낙태율을 줄이기 위해 여성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여성계에서는 임신·출산의 자기결정권을 위해 여성 스스로 피임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라고 주장해 왔다. 2012년에는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인 사후피임약을 약국에서 구매 가능한 일반의약품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피임진료·의약품의 경제적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피임에 관한 진료나 의약품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당사자의 부담이 크다”면서 “사전피임약은 약국에서도 구매 가능하지만 어떤 피임법이 자신의 몸에 맞을지 산부인과 전문의를 찾아 진료받고 상담을 한 뒤 결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바꿔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정원 전문의는 “앞으로 사후피임약을 더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사후피임약 외의 다른 피임법에 대한 충분한 성교육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채 접근성만 높인다면 약에 의존하는 피임 형태가 고착화될 수 있다”고 전했다.

#사전피임약(일반의약품)

사전피임약은 사후피임약에 비해 피임 성공률이 높다. 대신 21일간 약을 복용하고 7일간 복용을 중단하는 주기를 반복하는 등 장기간 복용해야 한다. 오남용하면 정맥염 심근경색 뇌출혈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사후피임약(전문의약품)

성관계 후 72시간 내 복용해 수정란의 자궁 착상을 막는다. 사전피임약보다 호르몬제인 레보노르게스트렐이 10배 이상 많이 들어 있어 복용 시 몸에 무리를 줄 수 있다. 의사의 처방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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