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따라비 오름의 개



비가 오락가락하는 주말이었지만 오름에 올랐다. 분화구 세 개가 아름답게 흐르는 능선을 만들어 오름의 여왕이라고도 불린다는 따라비 오름. 억새가 한창인 계절이니 날씨 상관없이 장관이리라는 생각이었다. 과연 멋진 풍경이었지만, 아무래도 억새는 햇빛과 바람 아래 보아야 제격이다. 비바람 속의 억새에는 왠지 가슴이 살짝 에인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가슴 에이는 광경이 있었으니, 비바람 고스란히 맞으며 하염없이 오름을 오르내리던 개 한 마리였다. 오름 정상에 난데없이 나타난 녀석은 이 사람 저 사람 기색을 살피며 돌아다녔다. 그러더니 나를 앞질러 내려갔는데 잠시 후에는 다시 올라오는 사람 앞장을 서고 있었다. TV 동물 프로그램에서 본 적 있는 등산길 안내견인가, 그런 개가 곳곳에 많은 모양이다, 나는 그렇게 가볍게만 생각했다. 그러면서 닿은 주차장에서 녀석은 또 사람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누군가 차에서 내리면 쫓아가고, 트렁크를 열면 쫓아가서 목을 빼고 올려다보았다. 그제야 자세히 보니 원래 흰색이었던 듯한 털은 누렇게 바래고 엉긴 상태였고, 배는 거의 등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은 떠돌이였고 배가 고팠던 거였다. 개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땅바닥에 고인 빗물을 몇 차례 핥다가 힘없이 엎드리는 개와, 하필 그런 날씨에 비바람 무릅쓰고 웨딩 촬영하는 신랑신부를 동시에 한동안 지켜보았다. 양쪽 모두에게 몹시 미안한 기분이었다.

가까운 가게에서 빵과 김밥용 햄을 사들고 돌아와 녀석에게 건넸다. 빵은 한입에 사라졌고 햄은 속 비닐을 미처 벗기기도 전에 이빨 사이로 들어갔다. 비닐을 마저 벗겨주고 싶었지만 굶주린 개의 입에서 햄을 꺼낼 수는 없었다. 얼굴에 촘촘히 붙은 풀씨를 떼어내는 것도 마음뿐이었다. 내 손이 비자 녀석은 곧바로 새 차를 향해 돌아섰다. 그러는 내내 그 얼굴에는 아무 표정이 없었던 것 같다. 왜 이것뿐이냐는 나무람의 눈길이라도 한번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내 회상 속 녀석이 놓인 풍경이 조금 덜 어두웠을 텐데.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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