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병훈] 능이



시골 친지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았다. 스티로폼 상자를 여는 순간 고향산천의 꽃향기와 물소리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내용물을 다칠세라 이끼를 깔고 덮은 정성이 겹겹이 배어 있었다. 능이 몇 송이에서 그토록 풍성한 가을을 느낄 수 있다니. 올해는 송이도 대풍이어서 값이 예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뒷산에서 능이도 함께 돋아났으리라. 보내준 분의 고마운 마음을 생각하면 혼자 먹을 수 없어 싱싱할 때 가까운 이웃과 나누었다. 현대인은 송이를 귀한 맛으로 생각하여 가장 값진 버섯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달랐다. ‘일능이 이표고 삼송이’라는 말이 있다. 능이는 버섯의 제왕이라는 말을 듣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표고가 송이보다 값진 버섯이라니,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표고는 참나무 줄기에서 돋아나니 더 귀할 것이고 송이는 땅에서 자라기 때문에 비교적 흔했으리라. 재배를 모르고 자연산에만 의존했던 때는 표고가 송이보다 귀한 버섯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능이와 표고가 약으로 쓰이는지 모른다.

일본인은 송이를 좋아한다. 그들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우리의 귀한 송이를 수출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송이도 즐겨 먹지만 능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능이전골, 능이백숙, 능이칼국수, 능이쇠고기조림, 이런 요리가 인기를 끈다. 사람들은 왜 능이에 그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확실히 능이는 버섯 중에서 덩치도 크고 향기도 강하다. 자생지에서 능이를 만나면 갓 표면은 거칠지만 우선 푸짐해서 좋다. 부채 같은 덩이가 몇 개씩 모여 돋아나고 많을 때는 군락을 짓기도 한다. 이렇게 맛과 향이 뛰어나지만 완전한 인공재배는 어려운 모양이다. 참나무 부스러기가 땅에 떨어진 부식질 토양에서 능이가 잘 자란다. 표고처럼 줄기에서 돋아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땅에서 자라는 셈이다. 우리는 많은 종류의 버섯을 인공재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송이도 인공재배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왕이면 능이도 대량 재배하여 누구나 값싸게 먹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글=오병훈(수필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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