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끝] 영혼·언어 살리는 소명 앞에 새로이 연필 잡을 때

기독 문인들은 영혼과 언어가 황폐해진 시대에 '구원과 치유'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처음 연필을 손에 쥐었을 때의 설렘을 기억하고 기독 문예 부흥의 소망을 가질 때이다.





 
지난 18일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 한양대학교 교수실에서 기독교문학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유성호 교수.


36명의 얼굴을 마주한 시간은 구원과 치유 그리고 화해를 지향하는 ‘기독교 문학’과 세상이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기독문학기행은 2016년 4월 ‘서시’의 무대인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시인의 언덕’을 찾아 윤동주 시인의 문학과 삶을 조명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이후 박목월 박두진 황순원 김현승 박화성 전영택 등의 삶을 취재하며 이들이 한국 근대문학 형성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외 작가로 일본의 미우라 아야코, 중국의 린위탕, 미국의 펄 벅 등을 소개했다. 소설가 김원일 김승옥 정연희 윤흥길 백도기 작가를 제외하고 모두 작고 문인들이다.

기독 문인들은 시대의 아픔을 작품의 살과 뼈로 삼았다. 이들은 작품을 통해 고난을 극복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전했다. 또 현재의 고난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이런 정신은 민족의 아픈 역사와 가난이란 굴레 속에서 꺼지지 않는 희망의 빛이 됐다.

민족 해방에 대한 소명의식이 있었던 기독 문인들은 식민지 시대의 가난하고 핍박받는 도시빈민과 농민의 현장을 형상화했다. 그동안 박화성의 작품은 많이 알려졌지만 주요섭의 경우 40여 편의 소설과 시 희곡 동화 등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작품을 썼지만 문학적 성과에 대한 한국 현대문학사의 평가는 대체로 인색한 편이었다. ‘사랑손님과 어머니’ ‘아네모네의 마담’ 등으로 대중적 명성을 얻었으나 통속소설 작가로만 알려져 연구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그의 ‘인력거꾼’ ‘개밥’ 등의 작품은 하층민의 고통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해 냈다.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기독 문인들이 한국문단에 기여도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이들을 기억할만한 자료 보전이 미흡하다는 점이었다. 연재에 소개된 36명의 작가 중 문학관이 세워진 작가는 외국 작가를 제외하고 11명에 불과했다. 소설가 전영택과 시인 김현승의 문학관이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번 연재를 통해 단편 소설 ‘화수분’의 작가 전영택 부인 채혜수(채애요라)가 독립운동가였으며, ‘생명의 봄’(1920)이 부인의 독립운동 투쟁기를 소설화한 작품이란 것을 알게 됐다. 목사이자 작가였던 그는 한국 신문학 운동의 개척자로 종교적 신념을 문학 속에 실천했다. 부부가 말년에 살았던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327-15 집 앞에 ‘전영택 집 터’ 표지석만 세워져 있다.

기독 문인들에겐 ‘영적 저수지’가 있었다. 문학적 토양을 만들어준 장소이다. 작가가 성장한 고향일 수도 있고 머물며 작품을 썼던 공간이기도 했다. 그곳을 찾는 것은 설레는 작업이었다.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의 무대가 된 대구 장관동 골목길은 전쟁이 막 끝난 1954년 그 무렵의 시간과 조우하는 시간이었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 길남이가 골목길에서 뛰어나올 듯했다.

‘고독의 시인’ ‘눈물의 시인’으로 불리는 김현승이 자신의 ‘문학의 발원지’이며 ‘영적인 저수지’라고 했던 광주시 남구 양림동은 근현대의 시간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20세기 초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교사들이 광주에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다. 김현승의 부친이 양림교회에 목사로 부임하던 때부터 30여년간 이곳에 머물며 신앙과 사유, 근대의 분위기 속에서 시의 방향을 가다듬고 천착했다. 제중로 47번 길에 그를 기념하는 무인카페 ‘다형다방’에서 가을의 향기를 닮은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이외에 평생의 문우로 살았던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 박목월이 함께 거닐던 경주 황성공원, 12살의 나이 차이를 넘어 서로를 존경했던 아동문학가 권정생과 이오덕이 머물던 경북 안동의 토담집과 충북 무너미 마을,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배경이 된 순천만 등은 여행지로 선택해도 손색이 없었다.

기독 문인들은 작품을 통해 치열하게 기독 사상을 전하고 싶어 했다. 김원일 작가는 “예수님의 정신은 포괄적이고 심오해서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빈자에 대한 사랑,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이 핵심”이라며 “그들의 어깨를 감싸시는 그분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윤흥길 작가는 “선교 문학이나 간증 문학이 기독교문학이 아니라 기독교 교리나 사상을 담은 작품이 기독교문학”이라며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작업, 인생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 세밀히 표현하는 작업이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돕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독 문인들은 영혼과 언어를 살리는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앞서 간 기독 문인들이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하며 성장했듯이 현대 기독 문인들은 영혼과 언어가 황폐한 이 시대에 구원과 치유 그리고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처음 연필을 손에 쥐었을 때의 설렘을 기억하고 기독 문예의 부흥을 위해 연필을 깎아야 할 때이다.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 문학평론가 유성호 교수가 말하는 '한국 기독문학'
"초월·포용 등 시대적 관심과 요청에 응답해서 빛과 소금 역할을"


지난 18일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 한양대학교에서 문학평론가 유성호(한양대 국문과) 교수를 만나 기독문학이 한국문학에 미친 영향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아래는 일문일답.

-기독교문학이 한국 문단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기독교문학은 하나님의 창조 및 구원의 역사와 함께 인간의 사회와 문화까지 폭넓게 다루는 포괄적 개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에서 인간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깊이 묻고 따지는 실존적 사건이기도 하다. 기독교문학은 이러한 형이상학적 차원을 한국문학에 부여한 공적이 매우 크다. 서양문학은 기본적으로 기독교문학의 성격이 강했던 반면, 한국문학은 기독교적 전통이 빈곤한 가운데서 훌륭한 문학적 성과를 많이 냈다는 점에서 그 역동성을 기억할 만하다."

-기독교문학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기독교문학이란 '기독교적 정신이나 이념이 작품의 주제 및 형식을 구성하는 문학 작품'이라고 소박하게 정의할 수 있다. 기독교문학에서는 예술성보다는 종교가 지향하는 정신이 우세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때 사랑, 소명, 희생, 죄의식, 구원, 소망, 종말론, 실존 의식 등이 그 안에 담길 수 있는 정서적 세목들이다. 그런데 그동안 쓰여진 문학 작품들은 지나치게 소재 차원이나 신앙고백 차원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기독교문학이 나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기독교문학은 영원성에 대한 추구, 신성(神聖)의 실현에 대한 의지, 영성 회복에 대한 열망, 사랑의 윤리를 구현하려는 의지, 초월적 세계에 대한 발견 과정 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해야 한다. 그럴 경우 기독교문학은 보다 더 온전한 인간 존재의 실현을 위한 지적 충격과 정서적 감동을 줄 것이다. 우리 시대는 불가피하게 이러한 종교적 가치들 예컨대 초월, 포용, 영성과 치유에 대한 깊은 관심을 요청하고 있다. 기독교문학은 이런 과제에 심층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문학을 통해 전할 수 있는 기독사상은 무엇인가.

"참된 기독교문학은 욕망을 넘어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인간의 존재방식에 대한 탐구가 중요성을 띨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자본, 권력, 성(性)이 온통 삶의 목표가 돼버린 세속 사회에서 기독교문학의 구원과 치유의 지향은 중요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것이다."

-국민일보에 연재됐던 기독문학기행에 대해 평가를 좀 해달라.

"한국문학의 전통 안에 기독교적 배경이나 주제 의식이 매우 넓은 저변으로 존재한다는 사실과 함께, 기독교가 한국문학의 든든한 바탕이자 지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 것 같다. 기자의 폭 넓은 식견과 부지런한 탐방 그리고 빛나는 문장이 이러한 역할을 잘 감당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인, 소설가, 아동문학가, 사상가까지 망라했다는 점, 그리고 외국 작가들도 상대적으로 많이 배려했다는 점에서 기독교문학의 전체상을 잘 보여주는 입체적 조감도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글·사진=이지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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